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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Nov 28. 2022

대림절의 보라색을 생각한다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미사에 갔더니 대림절 초와 제대 꽃이 보라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은 회개, 속죄를 의미한다. 그래서 대림첫 주의 초도 보라색이요 제대祭臺의 꽃도 보라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라색은 대림절의 색이다.

전에 <가을에는 보라색 꽃들이 >라는 글을 쓰면서 가을에 피는 여러종류의 꽃들을 열거한 바 있다. 하지만, 성당 제대를 장식하고 있는 보라색 꽃들은 낯선 종류들이 많아 꽃양배추를 제외하고는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다. 가만히 살펴보니 꽃양배추를 제외하고는 보라색 염료를 뿌린듯도 하다. 저 제대 꽃장식을 맡은 사람은 보라색 꽃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생각하니 멋진 꽃장식을 만들어낸 그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사실 보라색은 가시광선 중 가장 파장이 짧은 빛이다. 이 파장보다 더 짧은 파장은 자외선 영역에 속해 우리 눈으로 그 빛을 볼 수가 없다. 진한 잔상을 남기고 찰나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빛이 보라색이다. 그래서인지 보라색은 여러 상징성을 가진다.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고 마음의 우울, 불안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을 왜 참회와 속죄의 상징으로 사용했는지 정확한 연유는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고대 세계에서 보라색은 황제, 권위, 명성, 존엄성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보라색은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 또는 임페리얼 퍼플(imperial purple)로 불리었다. 즉 황제의 색이 보라색이었다.

보라색을 사랑한 대표적인 황제가 로마의 네로 황제였다. 네로는 알다시피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다. 이 욕심 많은 독재자는 자신 이외에 보라색을 쓰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는 부유한 귀족들이 자색옷을 입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만큼 이 자색 염료는 엄청나게 비쌌다.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은 지중해를 연한 레바논지역의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무렉스 브란다리스(Murex brandaris)라는 소라고둥의 점액에서 추출된 천연염료이다.


Murex brandaris 고동: 사진 출처 해양수산부 공식 블로그


1g의 염료를 만드는 데 무려 1만 마리의 고둥이 필요할 정도였고 제조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염료의 값은 매우 비쌌다고 한다. 이 염료로 염색한 최상품 옷감 1파운드는 로마 은화 5만 데나리온이나 했다는데 이는 같은 무게의 금값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황제나, 왕, 교황 등이 이 비싼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보라색 제의를 걸친 교황 프란치스코


이 소라고둥의 유일한 산지가 티레(tyre)였기 때문에 이 색소에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지역에 살던 페니키아인들이 값비싼 자주색 물감을 만들어 파는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들은 이 염료를 지중해 각 도시에 팔았는데 그 중요 무역항이 티로와 시돈이었다. 이곳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번성했는데, 성경에 자주 티로와 시돈이 거명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부유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이었다. 페니키아인들은 무역 거래 내역을 좀 더 쉽게 기록하려고 원시적인 상징문자를 유연한 알파벳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영어의 기원이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임페리얼 퍼플(imperial purple)의 전통은 동로마 제국으로 옮겨갔다. 동로마 제국 황제의 자녀들은 콘스탄티누스 대황궁의 보라색 반암석으로 건축한, 보라색 커튼을 드리운 방에서 태어났다는 뜻에서 'born in the purple(고귀한 태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시기에는 제국에서 직접 염료의 생산과 판매를 관리해 외부로 절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으므로 동로마 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보라색 염료의 생산법도 사장되었다고 한다. 이후 신세계에서 빨강색 색소(코치닐)가 발견되자 황제와 교황의 색이 보라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날 가톨릭의 추기경이 입는 수단은 진홍색이지만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것을 여전히 '보라색 반열에 오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거의 관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라색은 서양에서만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고 동양에서도 귀한 색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라색은 특권계층의 색이었다. 백제의 왕은 자색도포를 입었고 신라에서도 보라색 관복은 성골과 진골만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보라색 관복이 가장 높은 계급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었고 중국에서도 3대 별자리인 '삼원' 중 '자미원'이란 별자리가 있는데, 이 '자'가 바로 보라색을 뜻하는 '紫'이다.천자가 있는 곳에 자미원이 있고, 자미원을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 즉 천자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보라색을 신비함의 대명사로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보라색이 참회와 회개의 상징으로 변용된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종교개혁에 나선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의 부패상을 지적하면서 사제였던 자기부터 검은 수단을 입으면서 보라색은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될 뿐이다(보현생각).


안톤 폰 베르너의 ‘보름스 회의의 마르틴 루터’(1877년).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는 타락한 가톨릭교의 상징이었던 빨간색을 혐오해 개신교도들은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by 문명을 담은 팔레트, 창작과비평



종교개혁운동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가톨릭 교회는 그 깊은 상처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게 아니었을까? 즉 황제의 의상이자 교황의 상징이었던 보라색을 참회와 회개의 상징으로 바꾼 것. 그래서 제대의 보라색 초와 보라색 꽃을 바라보면 인류 역사의 정반합正反合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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