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Dec 01. 2022

추기경의 붉은 수단

   

앞글에서 대림절의 보라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추기경의 붉은 수단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톨릭의 색이 보라색에서 붉은색으로 이동하였다면 그 전통이 가장 확실히 남아있는 것이 추기경들의 붉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염수정 추기경의 서임식 정면 :2014 by 뉴시스


붉은 물결의 추기경들 : 2014 by 뉴시스


이 추기경 복장이 17세기, 화가 귀도 레니가 그린 <추기경 베르나르디노 스파다의 초상>에 나오는 복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가톨릭의 오랜 전통에 놀라움을 금치못하게 된다. 단지 지금의 의복색이 더 진한 빨강색이라는 차이 정도가 눈에 띈다.


<추기경 베르나르디노 스파다의 초상> by 미술백과


빨강은 고대부터 신성한 색으로 여겨졌다. 자신을 일반 대중과 차별화하고자 하는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 빨강색이었다. 이는 빨강색을 내기가 어려웠으므로 값비싸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고, 빨강색 자체가 가지는 강력한 이미지 또한 한 몫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기에의 오르한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강의 역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베네치아가 번영을 누릴 때, 예술가들은 단 하나의 빨강을 사용하였고 다양한 톤의 빨강을 사용하면 불명예, 혹은 저속한 것으로 여겼다. 이를 두고 오르한 파묵은 ‘우리 빨강은 단 한 가지 색이다’라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단 한 가지 빨강색은 영어로 크림슨(crimson)이라고 하는 진홍색을 말한다. 핏빛 붉은색이다.

이 완벽한 빨간색은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의 암컷에서 얻을 수 있었다. 연지벌레에서 진홍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남미제국의 에스파냐 정복자들이었다. 16세기, 이들이 남미제국을 정복하면서 희한한 색소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바로 코치닐이라는 색소였다. 이 염료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Dactylopius coccus)에서 추출하는데, 코치닐의 색은 ‘완벽한 빨강’에 가장 가까웠고, 색도 오래도록 바래지 않았다. 코치닐은 곧바로 금 은 다음의 값비싼 수출품이 되었다.


선인장에 붙어 사는 연지벌레: 몸 안에 붉은 색소인 코치닐이 함유되어 있다. 사진 by MBC


돈이 되면 이를 차지하기 위한 온갖 악랄한 방법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1kg의 코치닐 색소를 얻기 위해서는 8~10만 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했다.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남미에 닻을 내린 사람들은 돈에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연지벌레를 얻기 위해 현지인들을 겁박하며 이 벌레를 모았다. 그리하여 에스파냐의 세비야 항구는 유럽 연지벌레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펠리페 2세는 붉은 염료 생산 비법을 극비에 부치기 위해 외국인에게 코치닐 판매를 전격 금지했다. 이 붉은 염료로 만든 옷은 베네치아를 거쳐 오스만 튀르크 제국으로 스며나갔고, 당연히 이 귀한 염료로 만든 옷은 비쌌고, 차별화를 원하는 최고 권력자들이 이 색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까지 최고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되던 보라색이 동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던 시점이었다. 크림슨 옷은 고귀한 사람들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최고의 권위를 누렸던 황제와 교황, 왕들이 붉은 옷을 입었다. 나폴레옹의 붉은 망토나 추기경의 크림슨 장식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지금도 귀한 행사에는 붉은 카펫을 깔지않은가.



 말탄 나폴레옹: 붉은 망토를 걸쳤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 이후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 고위직이 입는 크림슨 수단과 모자를 혐오하였다.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묵시록 17장4절) 이 구절을 자주옷과 붉은 옷을 입는 교황으로 해석하는 무리들도 생겼다.

그래서일까? 현재 교황은 상시 흰옷 수단을 입는다. 흰색의 순결, 하늘을 상징하는 색으로의 의미를 내세운다. 그러나 가토릭 추기경은 여전히 붉은 수단을 입고 붉은 빵떡모자인 주케토를 쓰고 그 위에 삼각형의 비레타를 얹는다. 주교는 보라색의 옷을 입고 사제들은 검은색의 수단을 입는다. 여전히 붉은색과 보라색이 교회 내에 고귀한 색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사제들도 시기에 따라 흰색, 붉은색, 보라색, 녹색의 제의를 입는데 녹색은 평상시의 제의이고 보라색은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 참회와 회개의 의미로 입으며 붉은색은 순교자의 기념일에 입고 흰색은 축일에 입는다.

지금은 합성색소들이 개발되어 값비싼 염료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래서 특정 색깔의 옷이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내려오던 상징적 의미가 바랬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제들의 제의: 시기에 따라 상징적인 색의 제의를 걸친다.


현재 코치닐 색소가 문제가 되는 것은 딸기우유나 크래미 같은 고급 어육제품, 명란젓 등에 이 색소가 사용되는 것이다. 왜 문제가 되느냐고 하면 이 색소가 동물성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알러지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 상대의 식품에는 요주의 색소가 되었다. 그렇게 세계의 주가를 올리던 색소치고는 말로가 초라해지고 말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