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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08. 2022

예수와 마리아의 푸른 망토


푸른색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다. 영원히 펼쳐질 것 같은 하늘과 바다는 심원과 신비로움의 상징이다. 따라서푸른색은 영적인 색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씨왕조의 독재자들을 `최고존엄`이라고 표현하여 세상의 비웃음을 샀지만, 기독교계에서의 최고존엄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이다. 마리아를 최고존엄의 자리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모 마리아가 많은 지구인들에게서 사랑받고 숭배받는 어머니인 것을 어이하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이 가장 존귀한 존재인 예수와 마리아를 묘사하기 위하여 화가들은 푸른색을 선택했다. 


푸른 옷을 입은 예수와 마리아의 대표적인 모습이 튀르키예의 아야소피아 사원에 있는 모자이크 벽화이다. 아야소피아 사원은 본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 사원으로 봉헌한 성당이었으나 불타 사라졌고 지금의 성당은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6세기에 봉헌되었다. 이 사원은 1453년까지 그리스정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었으나, 오스만튀르크의 메흐메드 2세에 의해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이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한 메흐메드 2세는 성당을 파괴하는 대신 내부의 기독교 모자이크 장식만을 회칠한 후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세속주의를 내세우며 이곳을 박물관으로 변경하면서 이곳에서의 일체의 종교 행위를 금지시켰다(1935년). 이때 회벽으로 가려졌던 성당 벽에 기독교 성화 모자이크가 숨겨져 있음이 밝혀지면서 터키 정부는 회벽 제거작업을 진행해 모자이크 복원작업을 완료했다.  그러자 오랜 세월 회벽 뒤에 가려져 있던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마리아의 모습은 제대 위의 반원형 천장과 성당 서남쪽 입구 벽면에 남아있다. 이곳에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가장 중요한 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625년 페르시아와 아바르족이 이 도시를 침공해 성벽이 무너지려는 순간 성모께서 발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구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성모 마리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천정벽화 <브레포크라투사> : 푸른 옷을 입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 by 위키피디아



서남쪽 입구 벽면의 성모자상:  두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성 소피아 성당을 봉헌하고 있다. by 가톨릭 평화방송 평화신문



위 그림의 확대 by 가톨릭 평화방송 평화신문

      


또 하나의 유명한 모자이크 그림이 예수상이다. 예수의 모습은 반신 정도만 남아있는데, 예수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을 질책하는듯도 하고 연민을 가득 담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같기도 하다. 그 표정 속에는 압도적인 생생함이 남아있다. 예수의 이 모습은 그리스 정교회의 이콘 속의 예수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스 정교회 이콘화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 누가 이 그림들을 그렸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야소피아 벽에 남아있는 예수의 그림이야말로 예수의 모습을 그린 걸작 중의 걸작이 아닐까 여겨진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예수상: 말할 수 없는 심오한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이 그림들에서 예수와 마리아는 모두 푸른 옷을 입고 있다. 배경을 금빛으로 칠해 고귀한 분위기를 살린 중에 예수와 마리아가 입은 푸른 옷은 짙은 콘트라스트의 배색감을 드러낸다. 이른바 마린 블루(marine blue)라고 하는 바다의 깊은 푸른색이다. 이 모자이크들은 성상파괴운동이 지나간 9~10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천년의 세월을 넘어 심원한 푸른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하기 이를데 없다. 

이 푸른 색은 보석돌인 청금석(靑金石, 라피스 라줄리)에서 나온 색소인데, 이 돌은 울트라 마린(ultra marline)이라고 불리는 심청색이다. 청금석은 인도양, 카스피해, 흑해의 건너편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를 따라 서남아시아의 항구까지 이동하였고 거기서 배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울트라마린은 라틴어 ultramarinus에서 왔는데 이는 '바다를 건넌', '바다 너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울트라마린 블루는 푸른색으로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해 모든 색을 능가한 색으로 여겨졌다.당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사랑받던 성모마리아의 색으로서로 이 푸른색이 선택된 것은 당연하게도 생각된다.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무너지자 동로마제국의 보물들이 대거 베네치아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때 성화들도 베네치아로 많이 가게 되었다. 베네치아의 예술가들은 동로마제국의 이콘들에 묘사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푸른 망토에 완전 압도되었다.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를 촉발하게 되었다고 하니 라피스 라즐리에서 나온 푸른색이 세상을 뒤바꾼 셈이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울트라 마린을 이용해 심원의 푸른색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선봉에 섰던 화가가 르네상스 화가 조토였다. 그는 14세기 초, 부자 스크로베니 집안의 예배당의 벽화에 울트라 마린을 사용하였고 그 소문이 이탈리아 전역에 알려지면서 많은 왕족, 귀족과 교회까지 더 많은 울트라 마린이 칠해지기를 원했다. 본래 귀한 울트라 마린의 값은 더욱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었다. 당시 금 41g으로 울트라 마린 30g을 샀다고 하니 금보다 비싼 안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화가들은 이 색을 성모마리아에게 사용했다. 울트라 마린의 비싼 가격이  성모님의 고귀함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성모님은 사람들에게서 존중과 사랑을 받았다. 즉 가장 고귀한 사람에게 바치는 가장 고귀한 색이 울트라 마린이이었던 셈이다.      


성모 마리아의 색으로 울트라 마린의 이미지가 고정되자 왕실과 왕, 귀족과 군주들에 의해 푸른 옷이 대유행하게 되었고 붉은색의 인기가 시들해지게 되었다. 그때까지 색의 세계를 지배하던 붉은 색 염료 제작자들은 푸른색 염색업자들을 시기하여 교회 유리창에 악마를 푸른색으로 그려달라고 요청하며 저항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1862년 프랑스 화학자에 의해 합성 울트라마린(프렌치 울트라 마린)이 개발되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면서 과학기술은 고급색소의 가격을 깨뜨렸다. 그러나 애호가들은 여전히 진짜 울트라 마린을 찾고 있다고 하니 옛 명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색이다.   

  

현재 아야소피아 사원은 현 튀르키예 대통령인 에르도안에 의해 다시 모스크로 돌아갔다. 이슬람주의자인 에르도안은 터키의 국명도 튀르키예로 바꾸었다. 터키는 옛 오스만튀르크가 누렸던 번영을 꿈꾸고 있는듯하지만 아타튀르크의 혜안을 버린듯하여 터키의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일원으로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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