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잠시 멈추기 Ep.03
삼일절 연휴,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부모님께서 먼저 영화를 보러 가자고 선뜻 제안하신 덕분이었다. 영화관이 답답하고 불편해서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더니, 주변에서 요즘 ‘이 영화’가 핫하다며 먼저 관심을 표하셨다. 나 역시 궁금하던 참이었기에 냉큼 연휴의 영화 팟이 꾸려졌다.
영화가 개봉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선뜻 보러 가지 못했다. 눈물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단종’의 이야기라고 하면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니 슬플 거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엉엉 우는 수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개봉 초반엔 관람을 망설였다.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고 나니 예정되어 있던 해외여행을 떠날 시기가 다가왔고, 그 후에는 여독을 푸느라 영화관까지 갈 기력이 없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한 지도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극장에서 내려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극장을 찾았다.
한동안 영화관에 사람이 없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영화관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팝콘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한 매점에도 사람이 줄을 서 있었고, 상영관 역시 빈자리가 몇 개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아 평소라면 비어 있었을 앞자리까지도 사람이 꽤 많아서 깜짝 놀랐다. 상영관에 사람이 많으면 필연적으로 관크라 불리는 관람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늘기 마련이다. 그래서 평소 일부러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 영화를 보곤 했던 터라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불안과 기대를 함께 안고 영화가 시작했다.
영화를 평론할 만한 사람은 아니기에 평을 늘어놓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서사임에도 어찌하여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몰입하고, 마음 졸여가며 볼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독특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였던 건 분명하다. 상영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함께 웃고, 긴장하고, 울었다. 우리나라는 기초 교육이 탄탄하기에 관객 대부분이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알았을 텐데도 말이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후반부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그냥 얼굴을 푹 적신 채로 영화를 봐야 했다. 나는, 그리고 수많은 관객 역시 왜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했을까?
영화의 배경이자 실제 촬영지였던 강원도 영월은 사실 내게는 관광지라는 인식이 그다지 크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이번에 영화를 통해 접하고는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명맥이 끊겨 사라진 옛 왕조의 어느 한 왕의 유배지. 그마저도 그곳에서 지낸 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영월 사람들은 그 어리고 안쓰러운 왕을 잊지 않고 기려오고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이 해마다 변함없이 단종제를 지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이번 기회에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를 잊지 않고 챙긴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내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곳은 ‘단종’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조용히 지켜왔다. 그렇기에 영월이 단종을 기려온 방식이 더욱 빛을 보는 게 아닐까 싶다. 현대 사회가 각박하다고들 말하지만,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는 언제나 정의와 연민이 살아 숨 쉰다. 기구한 삶을 살다 간 한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듯이, 그를 잊지 않고 조용히 챙겨온 그곳에 마음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소년 왕을 위해 제에 과자를 올리는 그 마음에 담겨있는 것은 아마 안쓰러움과 애정 아닐까. 단순히 영화가 성공을 거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영월까지 발걸음하게 된 이유도 아마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요 몇 년 사이 영화관에 방문하면 관객의 대다수가 젊은 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상영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함께였다. 중장년의 관객들부터 상영 가능 나이를 막 넘겼을 법한 십대 청소년까지 다양했다. 3대가 함께 온 듯한 가족 관객도 종종 있었다. 나 역시 부모님을 모시고 왔으니 독특한 관객 분포에 일조한 셈이나 다름없다.
영화 푯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영화관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관객들에게 영화관을 찾아달라 호소하곤 했다. 그럼에도 유의미할 정도로 관객이 늘어나진 않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왕과 사는 남자》 상영관이 이렇듯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으로 꽉 찬 걸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더는 영화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영화관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보러 갈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가 그동안 부족했던 건 아닐까. 반대로 이 영화는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그저 숨 가쁘게 살아가다가, 잠시나마 극장 의자에 앉아 이미 알고 있으나 크게 인지하지 않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접하는 순간 우리 모두 다 스크린에 집중하게 되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관객들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두 여운에 잠긴 듯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떤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이야기’가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