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잠시 멈추기 Ep.02
먹을 걸 워낙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틈만 나면 새로운 먹거리를 유행시키는 일에 진심이다. 최근 ‘두쫀쿠’라고 줄여 부르는 두바이쫀득쿠키가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피스타치오와 화이트 모카, 바삭한 카다이프를 섞어 만든 속을 얇은 마시멜로우 피로 감싸고, 겉에는 쌉쌀한 카카오파우더를 묻힌 디저트다. 설명만으로는 그 맛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추운 겨울에도 사람들을 줄 세울 정도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름에 들어가 있는 지명인 두바이에서는 정작 판매하지 않는다는 문제의 두쫀쿠는 한국인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았지만, 나는 딱히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가격이 비싼데다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만 사 먹을 수 있다는 번거로움은 내가 딱 질색하는 요소였다. 그래서 인터넷이며 오프라인이며 전국이 떠들썩할 때도 나만큼은 꿋꿋하게 먹지 않으리라 다짐마저 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 다짐은 우습게도 금세 깨졌다. 다들 맛있다고 하니 먹어보고 싶어서 견디지 못한 동생 덕분에 한 입 먹어보게 되고 처음 느낀 건 놀라움이었다. 다들 추위까지 견뎌가며 줄을 서서 사 먹을만 했다. 이름답게 쫀득한 마시멜로우 피 안으로 빠삭하게 씹히는 카다이프며, 적당히 달고 고소한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의 맛은 조화로웠다.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먹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눈을 빛내며 맛있냐고 묻는 동생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맛있다고 답했다. 동생이 힘들게 사 온 두쫀쿠를 내밀며 먹어보라고 할 때에도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터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조금 창피했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맛있긴 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그 맛을 모르고 살 때는 상관없었는데, 입에 맞는다는 걸 알고부터는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 달고 고소한 맛이며, 적당히 녹이면 쫀득하게 늘어나는 얇은 마시멜로우 피까지도. 처음엔 며칠 이러다 말겠지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는 탓에 몹시 곤란해졌다. 결국 나는 인터넷을 켜 우리 동네 ‘두쫀쿠 맛집’을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내 취향임을 인정하고, 이해 안 된다고 말했던 짓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동네 맛집 탐방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추운 날씨에 줄 서서 오래 기다려보기도 하고, 허탕도 여러 번 쳤다. 보통 인기 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한두 번 먹어보고 호기심이 해결되면 금방 마음이 식곤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며칠 생각이 안 나고 잘 잊어가는 것 같다가도 얼마 안 가 또 생각이 나서 맛집을 찾아 배회하기 바빴다.
나만 사 먹느라 바빴던 건 아니다. 전국적으로 유행이라는데 기왕이면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따로 사는 부모님께도, 남동생 내외도 맛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매 제한 개수까지 가득 채워 구매한 적이 여러 번이다. 부모님은 생소한 디저트를 맛보더니 신기한 맛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해야겠다며 입에 잘 붙지도 않는 희한한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이셨다. 남동생 내외는 안 그래도 먹어보고 싶었다며 좋아했다. 아무 일 없이 안부 연락을 하기엔 조금 낯간지러워서 평소 연락을 자주 안 하는 편인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덕분에 연락도 주고 받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니 기분이 꽤 괜찮았다. 게다가 내가 사준 걸 맛있게 먹었다고,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는데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베풂이 주는 기쁨을 오랜만에 느꼈다고나 할까.
평소 SNS를 잘하는 편도 아닌데, 유행하는 디저트를 성공적으로 사 먹은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몇 번 업로드했다. 그걸 보고는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명 아이돌도 사 먹은 맛집이 근처에 있는데 내 생각이 나서 구매했단다. 혹시 관심이 있으면 보내주겠다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가벼운 마음으로 올린 SNS 게시글 하나를 보고 나를 떠올려 줄 서서 기다렸다니. 이보다 더 낭만적인 안부 연락이 또 있을까? 친구 덕분에 받아서 먹어본 유명 맛집의 두쫀쿠는 정말 맛있었다. 아마도 나를 위한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 맛있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유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남들이 다 알고, 욕심내는 것을 뒤따라가는 건 내가 그다지 선호하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유행에 대한 관심을 억지로 끄고 살았다. 혹시라도 기대하고 접했다가 실망할까 봐, 그게 무서워서 지레 겁먹고 먼저 밀어내는 겁쟁이였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으니까.
이번에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아예 담을 쌓고 모르는 척했다면 나는 아마 이런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들과 가볍게 공통의 주제로 웃고 떠들 일이 줄었을 것이며, 오랜만에 친구의 애정을 느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기대는 때로 실망을 데려올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기쁨을 데려올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오래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