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아닌 사람에게서 - 영산강

걷다 보니, 낯선 곳에 Ep.01

by 심주영



가끔 울적하거나 기운이 좀 없다고 느껴질 때면 본능적으로 물가를 찾아가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물가에 앉아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찰랑이는 수면을 바라볼 때면 숱한 고민이 저절로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잠깐은 확실한 위로였다. 바다든, 강이든, 하다못해 저수지라도 괜찮았다. 물이 있고, 앉아서 그 풍경을 감상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영산강을 찾은 것도 무언가 꽉 막힌 기분이 들어 평화롭게 흘러가는 물을 보고 싶어진 탓이었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곳은 마음이 힘들 때면 큰 고민 없이 가장 쉽게 발길이 닿는 곳이었다. 완연한 겨울 날씨가 된 지도 한참이라 단단히 챙겨입고 여정을 나섰지만, 그래도 이른 시각 맞닥들인 추위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최대한 강변 근처에 차를 대고 산책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친 탓에 별수 없이 물가를 등지고 카페로 발길이 향했다.


우드톤의 편안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카페를 골랐다. 내부에도 초록빛이 싱그러운 커다란 식물 화분이 곳곳에 자리 잡은 게 통창 너머로 엿보였다. 조용히 커피 한 잔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주문하고 자리를 잡으려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이미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곳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빈자리가 빠르게 채워졌다. 테이블마다 고개를 맞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천장 가까이 맴돌았다. 나는 창가 쪽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게 나를 녹여줘야 할 커피잔이 유난히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여행하는 일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내가 이 공간에서 조금 비켜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의 온도와 나의 온도가 서로 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은 커피를 일회용 컵에 옮겨 카페를 나섰다.


처음 계획한 대로 먼저 강변을 거닐 걸 그랬다는 얕은 후회를 하며 찾아간 강변의 산책로는 길이 잘 닦여있었다. 바람결이 날카롭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것에 비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덕분에 햇볕이 따스해서 양지를 따라 걸으면 추위가 잠시나마 가시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찬란하게 부서지는 윤슬은 또 얼마나 눈부신지. 산책로 중간중간 놓인 벤치 중 그늘에 잡아먹히지 않은 곳을 골라 앉았다. 벤치가 강을 바라보게 놓여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일회용 컵에 받아 나온 커피는 겨울 공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차디차게 식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풍미는 나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정신없이 바쁘게 흘려보냈을 시간을 벤치에 앉아 허무하게 흘려보내는 동안, 산책로에 사람이 꽤 늘었다. 다들 중무장을 하고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쌩 지나가기에 바빴다. 마치 내 주변의 공기만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이 공간에 속한 다른 이들과 나의 속도감이 달랐다. 타인들은 일분일초의 여유도 없는 것처럼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들 사이, 덩그러니 남겨져 혼자 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도 좋은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맛있게 느껴지던 커피의 뒷맛이 씁쓸하게 느껴져 입에 머금고 있기도 힘들어졌다. 머리를 식히러 왔는데, 생각은 더 복잡해졌다.


마음이 뒤숭숭해진 탓인지 어째 갑자기 점점 더 추워지는 듯했다. 서둘러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주차한 자리를 찾아가는 중,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한 식당이었다. 간판이 화려하게 눈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동네 식당 말이다. 내가 홀린 듯이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간 건, 칼바람을 이겨내고 식당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아저씨 한 무리를 목격한 탓이었다. 딱 봐도 이 근처에 사는 현지인으로 보였는데, 고민도 하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왠지 모를 신뢰감을 주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식사 시간이 되기 전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간혹 1인 식사를 꺼리는 식당이 있기에 문 옆에서 쭈뼛거리고 있자, 안에서 큰소리로 편한 곳에 앉으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안심하고 자리를 잡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메뉴 구성은 단출했다. 선지해장국과 선지 없는 해장국. 선지는 그리 선호하는 식재료가 아니건만, 나를 이 식당까지 이끈 아저씨 무리가 한 명도 빠짐없이 선지해장국을 시키는 걸 보자 나도 참을 수 없어 덩달아 선지해장국 한 그릇을 주문해 버렸다. 홀린 듯이 주문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펄펄 끓다시피 부글거리는 국밥 한 그릇이 나왔다. 행여 입을 데일까 봐 조심스럽게 퍼 올린 국물을 한 숟갈 맛보니 식욕이 마구 솟구쳤다. 몇 숟갈을 뜨고 나서야, 내가 꽤 허기져 있었다는 걸 알았다.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우니 찬 기운에 잔뜩 찌들었던 몸이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배만 든든하게 채워지는 게 아니라, 어쩐지 매서운 동장군의 기세에 눌렸던 내 마음마저 녹는 듯했다.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덜렁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쓸쓸함보다는 그저 정겹다는 느낌만 가득했다. 뜨끈한 뚝배기 하나 말고는 그들과 나 사이, 그 어떠한 공통점도 없는데 나는 식사하는 내내 그들의 활기와 온기를 나눠 받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그날 영산강 변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그리고 실제로 얻어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가만히 앉아 물가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않은가. 결국, 추위는 사람이 나눠주는 온기만이 녹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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