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인 아침, 잠시 생각을 비웠다

도시에서 잠시 멈추기 Ep.01

by 심주영



겨울날 이른 아침에 창밖을 확인하는 것은 어쩐지 선물의 리본 끈을 풀어보는 느낌이다.

푹 자고 일어나서 아직 잠기운을 잔뜩 묻히고 빼꼼히 창문을 열어보니 바깥이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다.

겨울은 겨울인지라 계속해서 춥긴 했지만, 쌓일 정도로 눈이 온 건 오랜만이었다.

마치 눈처럼 하얀 그릭요거트를 느지막한 아침 식사로 즐기며 잠시 고민했다.

아침 식사 후에 식후 운동 겸 산책 삼아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갈 계획이었다.

눈이 제법 쌓인 터라 귀찮음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쌓인 눈을 밟고 싶어서 중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방한화까지 야무지게 챙겨 신고 나간 바깥은 짐작만큼이나 춥고, 생각보다 더 고요했다.

일요일인 덕분에 사람들이 집 밖으로 많이 나오지 않은 덕분에 길에 쌓인 눈은 여전히 새하얀 반짝임을 유지했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의 절반이 만세를 하듯 와이퍼가 번쩍 세우고 있어 제법 귀여웠다.

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4차선 도로는 마치 배속을 늦춘 것 같았다.

차는 물론이고, 평소라면 쌩하니 달려갔을 배달 오토바이조차도 걷는 속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도로는 평소보다 매우 고요했다.

이 도시 한가운데에서 이런 고요함을 얼마 만에 만끽하는 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카페로 향하는 길에 만난 큰 사거리에서 건널목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뒤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파란색, 빨간색의 플라스틱 썰매를 끄는 어린아이들이었다.

든든한 패딩 점퍼와 털모자며, 장갑까지 야무지게 챙긴 아이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내가 가려는 방향에서 왼쪽으로 틀면 동네에서 그나마 가장 높은 언덕배기가 있는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가려는 모양이었다.

눈이 쌓인 걸 확인하고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을 닦달해 채비하고 나왔을 게 뻔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해맑은 아이들은 보니, 평소 눈이 오는 날 나는 어땠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눈이 오는 날에도 머릿속이 늘 출퇴근길 걱정으로 가득했다.

눈이 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지도 못하고, 어렸을 때처럼 눈놀이를 기대하며 들뜨지도 않았다.

나에게 그런 순수함이 남아 있던 건 대체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을까?

물론 나만이 아니라 사회에 찌든 많은 어른이 이럴 테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조금 슬퍼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이 길면 또 얼마나 길까.

그 길지 않은 인생에서 이렇게 예쁘게 눈이 오는 날이 또 얼마나 있을까.

출근길 걱정일랑 내일 아침으로 미뤄두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생각을 비우기로 했다.

썰매를 집에 모셔두고 오매불망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저 아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