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보험을 신청하느라 신청서를 작성하던 중 보이는 직업란.나의 직업은 무직, 그리고 주부. 직업란을 작성하며 마음이 무겁다. 경력 단절. 꿈 많은 나는 지금 경력 단절로 살아가고 있다.
'꿈 많던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우게 했단다'
토이의 아름다운 노랫말처럼 나는 첫 아이를 낳은 후 모든 일을 접고 오직 육아에 전념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물론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아니다. 나는 일을 하려고했다면 분명 커리어를 이어 나갔을 것이다. 경력 단절은 분명히 그리고 엄연히 내가 선택한 일이다. 그럼 왜 난 경력 단절을 선택했을까? 원래 두 가지 이상의 일에 집중하는 일명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못하는 내 성격에도 있었고, 일은 언제든 또 할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아이는 적어도 세살까지 엄마인 내가 직접 키운다.'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요즘 시대에 다소 고리타분한 생각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신념은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들었던 '인간관계 심리학' 수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나는 졸업을 1년 앞둔 4학년 학생이었고 예술대 학생으로서 중요한 졸업 전시를 준비해야 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문턱에 있던 터라 4학년 시작부터 정말 마음이 분주했고, 과 대표까지 맡고 있어 그야말로 시작도 전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어쩌다 심리학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는지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나의 내면이 흔들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 널뛰는 마음을 잠잠하게 다독여준 수업이란 사실은 확실히 기억한다.
'자존감.' 지금은 자존감에 대해 많이 다루곤 하지만, 당시 내가 대학생이었던 10년 전에는 자존감이란 단어가 다소 생소했다. 자신감, 자존심과는 다른 개념으로 내면의 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긍정의 힘. 그게 바로 자존감이다. 당시 앞이 막막했던 때에 이 자존감 수업으로 많은 힘과 위로를 얻었다. 또한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살아가는 과정을 훑어보며 한 인간으로서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특히 어려서의 환경과 주 양육자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뤘었는데,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 살이 될 때까지 주 양육자인 엄마와의 관계는 아이의 평생을 좌우하며, 그 시기에 형성된 자존감은 절대 변할 수 없는 단단한 힘이 된다는 것. 고작 24살의 나.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렸던 나인데 내 아이는 적어도 세 살까지는 내가 잘 키워보겠다는 신념을 굳혔다. 그리고 그 신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렇게 순수했던 시절 품었던 굳은 신념을 나는 지켜냈다. 만삭이 될 때까지 일했던 나는 출산 한 달 전 모든 일을 접었다.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안 해본 태교 없이 나와 아이에게 공을 들였다. 태어나서는 어땠을까? 정말 열심을 다해 키웠다. 무엇이든 하고자 마음먹으면 성실, 열심히 할 자신 있는 나다. 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 건 당연지사, 모르는 것들은 육아 선배의 말,육아서 열심히 읽어가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전적으로 내 공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나의 아이는 예쁘게 잘 커가고 있다.
일단 내가 정한 신념을 지켰고, 또 이뤄냈기에 경력 단절을 선택한 나를 자책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점점 커가는 아이를 보며 내가 이대로 나, 정확히는 나의 커리어를 멈추고 있어도 되나 싶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꿈이 있었다. 한시도 나의 꿈을 잊어본 적이 없었던 나인데 순간순간 나의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아찔했다. 문득문득 이대로 멈춰진 순간이 너무 무섭고 떨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멈춰 있을 수만은 없다고 계속 대뇌이며 내가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난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뭘 잘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좋을까? 정말 많은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남들 보기에 단절되고 멈춰 있었던 나였을지 몰라도 내 생각과 마음은 한 걸음씩 준비하고 또 준비해 나가고 있었고 또 지금도 그렇게 진행 중이다. 비록 경력 단절로 나의 커리어 공백은 생겼지만 다시 나는 '나'로 돌아갈 것이고 꼭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