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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씽 Dec 17. 2021

정말 딸만 사랑인가요?

아이는 모두 사랑입니다.

"딸은 사랑입니다"


 세 달에 한 번씩 오는 정수기 관리 매니저는 내 아이가 아들인 줄 버젓이 알면서 매번 무례한 말을 던졌다.

자신은 딸이 둘이 있다며 자랑하듯 이야기했는데, 아들을 키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아들, 딸의 차이를 논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악의가 없어 보였으니 그저 딸이 예뻐서 하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올 때마다(세 달마다 했던 말을 잊나 보다.) 저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여러 번  듣는 나로서는 불편했다.



"둘째는 아들이야? 딸이야?"

 

 둘째 아이를 가진 뒤 항상 성별 질문을 받곤 했다. 마치 둘째도 아들이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은 눈빛과 말투로 내 답변을 요구했고 심지어는 '딸이어야 할 텐데...'라는 진심 어린 걱정까지 친절하게 받았다. 가장 문제는 그들은 자신들의 말에 그 어떤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여기서 내가 발끈하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었다.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딸이었으면 좋겠어?"


 사실 나와 남편은 성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 주시는대로 감사하고, 건강하면 된 거지 했다. 오히려 나는 아이를 가지기 전 TV 예능에 나온 쌍둥이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밤마다 자기 전에 삼십 분, 한 시간씩 그 아이들 보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러면서 은연중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귀여운 장난꾸러기 아이가 나에게 딱인데! 그런 마음을 품어서일까? 나는 굉장히 비슷한 첫 아이를 얻었다.


 아들이 하나일 때는 남들의 생각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의 아들은 나에게 엄청난 사랑이었으니까. 아들로서가 아닌 한 아이로서 나의 아이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유독 잘 웃었고, 애교도 남달랐으며 맘도 따뜻한 무엇보다 어린데도 엄마를 잘 챙기는 다정한 아이였다. 그 누구의 아들, 딸 편견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나의 잔잔했던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주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편견에 사로잡혀 던지는 불편한 말들. 내가 들은 말들은 생각보다 경악스러웠다.

 

  "둘째는 딸이어야 할 텐데" (왜죠?)

  "딸이 예쁘고 좋지 딸이 사랑이야" (어째서요?)

  "딸 부잣집이 부부금실이 좋아" (우리 부부도 사이좋은걸요?)

  "아들은 장가가면 끝이야" (아들은 자식이 아닌가요? 키우기 나름이죠!)

  "헐! 아들 둘?" (헐 이라니!)

  "아들 둘이면 엄마가 깡패가 된대요"(오... 주여...)


 이 말들은 실제로 내가 들은 말들이고 모두 하나하나 반박했었다. 아들 엄마에게 무례한 사회 속에서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고, 계속되는 친절 아닌 친절함에 내 영혼이 지쳐가는 느낌이었다. 두 아들의 엄마가 이렇게 동정받고 슬퍼야 하는 일인가?


 그렇게 계속되는 편견 속에 나 또한 물들고 있었다는 걸 어느 순간 인식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들이라서' '남자아이니까'라는 말과 생각이 무섭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불쌍한 아들(그것도 둘이나 있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씩씩하게 잘 노는, 에너지가 밝은 아이를 역시 남자 아이라 에너지가 넘친다고 생각했고, 아직 감정표현에 미숙한 어린아이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남자아이로 보았으며, 본인 일에 몰두를 잘하는 아이를 자기 세계에 빠져 귀를 닫는 여느 아들들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한 번씩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는 나를 보며 이는 나의 미숙함 문제이면서도  '나도 목소리 큰 아들 엄마가 되는구나' 하며 문제를 아이 탓으로 돌렸다.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다는 걸 인지했을 때 아이에게 참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물론 아들과 딸의 차이는 분명 있다. 하나님이 굳이 둘의 성별을 만들었겠나. 그러나 정해져 있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커가는 경향이 크다고 본다. 여자이니까 이렇고, 남자이니까 이렇고. 세상은 바뀐다고 바뀌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아들 둘 키우는 입장에서 보니 아직 멀었다.


 적어도 나의 아이들, 다음 세대의 우리 아이들은 변화된 세상에서 생각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창한 어떤 일을 시작한다기보다는 내 생각부터 바꾸는 것을 실천하고 싶다. 나의 아들 아니, 나의 아이가 다정함과 섬세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일깨워 줄 것이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여 줄 것이다. 그 시작의 한편이 아이에 대한 그림일기다. ('아이는 예쁘다' 매거진을 쓰고 있습니다.) 아이에 관한 그림일기를 쓰면서 아이를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되고 아이의 다정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의 편견이 아닌 내 아이의 고유함을 읽게 되어 참 좋고 그래서 더 예뻐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그간 스쳐 보냈던 잔잔한 말과 행동들을 되새겨보며 생각 이상으로 내 아이는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힘이 닿는 한 꾸준히 해보고 싶은 작업이다.


아이들은 아들 딸 구별 없이 모두 사랑이다. 세상이 정한 정의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또한 마찬가지. 성별의 편견 없이 아이들을 그저 아이답게 바라보는 아이가 행복한 그런 세상이 어서 오길 바란다.




 


 정수기 관리 매니저가 정확히 세 번째 방문 때 "딸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들도 사랑이에요"라고  말했다. 최대한 차분히 웃으며 이야기한다고는 했지만, 조용히 쏘아붙인 나의 예상 못한 반격에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생각이 정리된 지금은 더 차분히 안정된 말투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 딸이라서가 아니라 아이는 그저 사랑이랍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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