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하고 싶은 글쓰기와 그림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남편의 따끔한 응원이었다. "고민만 하지 말고, 뭐라도 일단 그냥 해봐" 생각보다 따끔했고, 또 따뜻했던 말. 내 남편의 말이라 금방 수긍이 됐다. 맞다. 매일 고민만 했지. 괴롭기나 했지. 내가 뭘 했나 싶었다.
난 안정 지향에 완벽한 계획형 인간이다. 철저히 계획하고 정리하에 일을 시작한다. 불확실하거나 맹숭맹숭한 이유로는 일을 시작하는 법이 잘 없다. 분명한 목표, 목적, 결과를 위해 하는 편이고 시간과 물질적인 값을 대비해보고 기회비용을 따져 손해 볼 일은 잘 시작하지 않는다. 안정 지향이고 겁이 많은 내 성향에서 온 것이다. 일도 항상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차곡차곡 쳐내는 편이고,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큰 목표를 정하고 하나씩 가지치기해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정리한 뒤 시작한다. 급 만남은 나에게 불편한 일이고 계획표 없는 즉흥 여행? 꿈도 못 꾼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일은 누구보다 완벽하고 성실하게 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늘 실행력 부족이 내 발목을 잡았다.
‘뭐라도, 일단, 그냥’ 은 나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런데 남편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따끔한 주사라도 맞은 듯 얼얼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이내 무릎을 탁! 치며 그렇지, 맞아! 라며 속으로 대답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으면서 계획형 인간이라는 명분 하에 정작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였을 뿐. 뭐든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나하나 정리하며 하는 성격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할 수가 있었겠나.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sns 피드들이 떠올랐다. 한창 내가 할 것들을 고민할 때 그들의 첫 시작이 궁금해 몇 년의 발자취를 따라 게시물을 내리고 내려 첫 게시물을 따라가 보았었다. 그들도 지금의 확고한 생각과 스타일이 정해지기까지는 수개월, 또 몇 년이 걸렸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또 해보면서 결국 자신만의 색을 찾은 것.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해답을 얻었다. 그래, 일단, 뭐라도, 그냥, 내가 할 것들을 하자!
그래서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글과 그림을. 하루아침에 일을 벌인다는 것이 나에겐 정말 나답지 않은 결정이고 너무 뒤죽박죽 같아 사실 마음도 좀 불편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일단 내가 할 것들을 하다 보면 여러 개의 갈래길도 조금씩 조금씩 정리가 되겠지 생각했다. 좀 식상하지만 그때마다 등장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것이라고! 그동안의 내 생각을 기록하고 또 틈틈이 그림도 그려보기로 마음먹는다. 할 수 있겠지? 그냥 해보는 거지! 나답지 않게 덜컥, 용기를 내본다.
김동률 님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마음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 듣는 곡이 다르다. jump라는 곡이 덜컥 생각나 틀었다. ‘덜컥 저지르는 용기와 두둑한 배짱을 갖고서 열정에 가득 차 나를 불사를 그 무언가가 필요해’ 이 가사가 필요했나 보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덜컥 저지르는 용기, 두둑한 배짱이 이제 조금 생긴 것 같다.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