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보호대 없이 잘 움직일 수 있는 몸으로 돌아가야한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보호대는 헬스장에서 보이는 굵은 리프팅 벨트나 질긴 무릎/손목 보호대가 아닌 약국에서 팔거나 병원에서 처방하는 얇은 보호대를 뜻합니다.
허리 보호대, 무릎 보호대, 발목 보호대, 손목 보호대 등등... 약국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물건들입니다. 보통 어느 부위에 급성 손상을 당했을 때, 정도에 따라 병원에서는 '깁스 할 정도는 아니니 당분간 보호대를 착용하세요.' 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조금 괜찮아지면 착용하던 보호대를 빼고요.
그런데, 일반인 분들은 통증이 재발하거나, 불안감이 느껴지거나, 만성적인 통증이 있을 때마저 보호대를 착용, 과하게 의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절을 꽉 잡아줌으로 인한 심리적 안정감', '관절을 견고하게 하고 충격으로부터 보호'와 같은 것이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보호대는 말 그대로 보호대. 통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 힘들며, 불필요하게 오래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은 우리 몸을 둔감하게 만들어 움직임을 더 악화시키고 부상 재발, 추후 다른 부상까지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 등으로 인한 급성 손상의 경우, 조직이 회복되는 동안 회복에 방해되는 범위에서의 움직임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부터 손상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대 착용이 권장됩니다. 다만 '통증이 완화되면 재활은 끝나는 걸까?'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염증 및 부종 관리 이후엔 관절을 오히려 움직여주며 가동 범위를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보호대가 오히려 적절한 회복을 방해하는 꼴이 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능동적으로 관절을 움직여주며 점차 가동 범위를 늘려가는 것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좋지 못한 움직임 패턴 등으로 인해 미세 손상이나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통증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손상 정도에 따라 재활 극초반에 보호대 착용이 권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하였듯이, 보호대 착용이 누적된 미세 손상이나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인 '좋지 못한 움직임 패턴'을 수정하는 역할까지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통증이 나아진 경우, 보호대로 내 몸을 보호해줘서 그렇다고 단정 짓긴 힘듭니다. 통증이 느껴지니 움직임을 제한하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손상된 조직이 회복 과정을 거치며 통증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도 잘못된 움직임 패턴으로 인한 미세 손상 누적을 방지하기 위해 움직임을 '리셋' 해주어야겠죠? 이는 운동을 통해 내 몸을 '능동적으로' 움직임으로써 가능합니다.
급성 손상이든 미세 손상의 누적이든, 부상 후 사라지지 않는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아프다고 쉬고, 운동을 피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치료받은 후 내가 능동적으로 노력해서 몸을 움직이려고 한 적이 있나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이버에 '보호대 주의사항'을 치면, 보호대를 너무 오래 착용할 때 '근력의 약화'를 주의하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단지 '근육이 빠진다' 정도로만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보호대 의존은 근육, 인대, 힘줄 등 [하드 웨어]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소프트 웨어] 신경계 역시 다운그레이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게 가장 무섭죠. 하드 웨어가 강하거나, 손상 이후 회복이 되었어도 소프트 웨어까지 돌려놓지 못한다면 하드 웨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위에서 말한 좋지 못한 움직임으로 인한 미세 손상의 누적으로 인한 통증 재발의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요한 건, 단순히 보호대가 물리적으로 착용 부위를 견고하게 하는 역할만 하진 않습니다. 보호대에 의해 제공되는 압박력과 더불어, 보호대를 착용한 관절 주변의 피부, 근육에 새로운 감각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리 몸은 감각에 매우 민감해 감각 입력이 바뀌면 움직임 산출도 바뀌는 함수와 비슷합니다. 물론 함수처럼 식이나 규칙이 있진 않습니다. 사방에서 제공되는 압박력과 새로운 감각 정보는 보호대를 착용한 관절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우리의 몸은 적응을 하게 되고, 보호대를 착용한 상태를 디폴트로 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즉, 과하게 의존하던 보호대를 제거했을 때 감각의 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미세한 감각 입력에도 적절한 움직임 패턴을 산출해낼 수 있는 신체의 능력을 저하시키고, 둔감해진 신체는 추후 부상에 취약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만성 허리 통증 환자들의 허리 보호대 착용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만성 허리 통증 환자, 혹은 엑스레이 상 퇴행성 척추증 진단을 받은 61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Back School" 이라는 이름의 교육을 먼저 진행하였습니다. 이 "Back School" 에는 기능해부학, 만성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요소 뿐만 아니라 home exercise의 이점과 루틴까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즉, 실험 참가자들은 거짓된 정보가 아닌 통증, 통증에 대한 원인과 운동의 이점을 명확하게 파악을 했다는 점이죠.
그 후 대조를 위해 treatment group과 control group으로 나누었는데요, treatment group은 통증이 느껴질 때 허리 보호대 착용을 권고하였다고 합니다(일 최대 4시간). 추가적으로 모든 그룹의 참가자들은 들은 교육을 바탕으로 홈 트레이닝 역시 진행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참가자들은 주에 운동 및 보호대 착용 시간을 자발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실험은 총 6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결과가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통증의 정도를 나타내는 NRS score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 통증으로 인해 어떻게 일상 활동과 기능이 영향을 받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PDQ score의 경우 보호대 착용을 권고받은 treatment group에서 더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명확한 이유는 알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는 (운동 및 통증 교육이 병행되더라도) 만성 허리 통증 환자에게 보호대 착용을 권고하는 것은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일상에서의 기능 및 삶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실험이 총 6달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호대 의존으로 인한 심리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ex: 난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다니는데 이런 건 하면 안되겠지?). 또 이 연구에서는 '[하루 최대 4시간 보호대 착용' 이라는 제한을 두었는데 사실 많은 중,장년층 분들이 훨씬 더 많은 시간 보호대를 착용하시곤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통증 악화나 운동 조절 및 기능에서의 문제도 나타날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보호대 없이 잘 움직일 수 있는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