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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느려도 괜찮은 삶이 있을까요?

빠름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by 아카


물가가 오르고 생활비 부담이 커지다 보니, 지출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중 하나가 통신비였다. 그러고 보니, 알뜰폰 저가 요금제를 사용한 지도 꽤 됐다. 기본 데이터 15GB에 매달 50GB 추가 제공으로 2년 가까이 잘 버텼다.


이번 달부터는 요금제를 조금 바꿔보기도 했다. 데이터는 여전히 15GB지만, 대신 '밀리의 서재' 구독이 포함된 요금제다. 전자책을 꾸준히 읽고 싶었던 터라, 통신사 제휴 혜택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데이터가 줄어든 만큼, 걱정도 생겼다.


다 쓰고 나면 저속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는 있다지만, '빠름'이 일상이 된 요즘 느려진 속도를 참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아직 4G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 더 느려진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다.


사실 불안했던 건 속도보다 '느림'이라는 감각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온라인에서 벌여놓은 일이 많았고, 뭘 하든 빠르게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다.


요금제를 바꾸고 나서부터는 데이터 사용량을 더 신경 쓰게 됐다.


월초에는 하루 사용량을 나누며 계획도 세웠다.
"하루에 0.5GB만 쓰자'며 아껴 쓰려했지만, 습관을 바꾸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결국 예상보다 빨리 데이터를 다 써버렸다.


'이제 어떡하지? 추가 데이터를 사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그냥 써보기로 했다. 막상 느려진 속도로 써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영상이 바로 재생되지 않거나, 사진 많은 글을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었다. '지금 당장, 바로 봐야 해!'라는 조급함을 내려놓으니 불편함도 줄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걱정했던 건 결국 '한 번도 안 가본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느림의 미학’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나는 늘 예외처럼 살아왔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였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고,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알게 모르게 나는 스마트폰이 만들어 놓은 리듬에 맞춰 하루를 살고 있었던 거다.


그 속도를 조금 늦춰보니, 의외로 괜찮았다. 다급했던 마음도, 뭐든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안 해봐서 몰랐던 거지,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고, 오히려 내 리듬대로 살아가는 연습이 되었다.


느려도 괜찮고, 겁낼 것 없다고.
꼭 빠르고 편해야만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새로운 길이 낯설어 불안하더라도
한 걸음 내디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다.


여러분들도 지금 뭔가를 시작하려다 망설이고 있다면,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막상 해보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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