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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쿡 찌른 한마디

커피보다 따뜻했던 어느 벽면의 문장들

by 아카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 휴가를 냈던 어느 날. 잠시 시간이 비어, 아내와 함께 가까운 백화점으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시선이 벽면에 멈췄다. 형형색색의 포스터들이 일렬로 붙어 있었다. 귀여운 캐릭터들, 선명한 색감, 그리고 짧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RELAX
COFFEE PLEASE
IT'S NICE
DON'T LOOK BACK


문장 하나하나가 꼭 누군가 내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포스터 앞에 멈춰 선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천천히 그림을 바라보고, 또 어떤 이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이 공간이 하나의 쉼표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멈춘다는 게 제일 어려운 일 같다. 뭘 하든 늘 마음이 바쁘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해야 할 일은 늘 쌓여 있고, 머릿속은 조용할 틈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만큼은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포스터도, 벤치도, 그리고 그걸 바라보던 나도.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잠깐이라도 느껴보자는 마음만 가득했다.


휴대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포스터를 다시 바라봤다.

'COFFEE PLEASE' 문구 앞에 선 어떤 여성의 뒷모습이 인상 깊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어쩐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매일 우리는 무언가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런데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간절하다. 오늘 나에게는 이 공간이 그랬다.


예상하지 못한 전시. 예상하지 못한 여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멈췄기에 얻은 마음의 틈.


가벼운 마음으로 백화점을 찾았지만, 물건보다 더 귀한 걸 담아 온 기분이었다.


짧지만 분명히, 마음이 정리되고 쉬어갈 수 있었던 시간. 오늘도 해야 할 일은 여전하지만, 잠깐의 멈춤이 주는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하루를, 조금 더 부드럽고 단단하게 건너가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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