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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Oct 07. 2024

오늘은 안 가면 안 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책상에 앉아 맑은 정신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머릿속을 스쳐가는 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산'이었다. 앨범을 찾았다. 오래되어 바래가는 사진들 속에 내가 있었다.


산행하는 나, 산행 후의 나, 산으로 출발하는 나, 정상에 도착한 내가 거기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곁에는 늘 아버지가 거기 서 있었다.


사진 속에는 산 정상에서 느꼈던 경이로움, 맑은 공기로 가득했던 등산로, 함께 산을 올랐던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끔은 힘들어 찡그리는 표정과 정상에 올랐다는 뿌듯함으로 행복해하는 나의 눈빛까지.


나에게 ‘산’이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내 인생의 많은 순간을 함께해 온 동반자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산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산을 나는 잊고 있었다.


한때 나에게 산은 정복 대상이었다. 정상에 올라가면 보람과 작은 성공에 대한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산은 나에게 힐링 공간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늘은 안 가면 안 돼?


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나를 깨우신다. 잠에 깊이 빠져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불편한 존재였다.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나를 가차 없이 흔들어 깨우는 아버지. 아버지는 산악회 회장을 오래 하셨다. 주말마다 지겨울 정도로 참 많은 산을 다녔다.


고등학교 때, 버스로 한 시간쯤 걸리는 곳에서 살았던 나는, 학교에 가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주말에는 푹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산에 가자며 일찍 깨우시는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바로 뒤에 있는 낮은 산에서부터, 해발 976m인 금오산, 설악산, 월악산, 치악산 등 여러 국립공원까지 나는 아버지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산행을 해야 했다.


주말 아침 산행은 대학교 때도 이어졌다. 모처럼 고향에서 동네 친구들과 과음한 날에도 다음 날 아침이면 구토를 두세 번 하면서까지 산에 어김없이 올랐다. 그래도 군소리 없이 아버지를 따라갔던 이유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으므로 매주 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언제 또 아버지와 함께 산에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어려서는 하지 못했다.


“올라갈 때는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고, 가까운 곳을 보고 걸어라.”

“내려갈 때는 몸의 중심을 조금 뒤에 두고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말을 재밌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한두 마디 정도만 툭툭 던지고 마는 아버지였기에, 산에 가는 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횟수가 쌓이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벽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고통이었지만 산을 오르는 일은 나에게 꽤 큰 즐거움이 되어갔다.




주말마다 아버지와 산에 오르면서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되었다. 투박하긴 하지만 아들을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그가 왜 굳이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 자신과 함께 걷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관한 아버지의 조언도 산길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산 중턱에 앉아 준비해 온 오이를 먹으면서 아버지는 살아온 이야기를 두서없이 꺼내곤 했다.


"대학 생활 만만치 않지? 그래도 지금이 좋을 거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더 힘든 일들이 많을 거야."


답답한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게 조금씩 좋아졌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웠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억지로 걸었던 산행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나도 아버지처럼 산에 대한 애정에 물들기 시작했던 것일까.


나는 아버지와 소확행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땀을 느꼈고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힘겹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았고 정상에서 뿌듯하게 내 손을 잡는 체온을 느꼈다.


아버지와 함께 뚜벅뚜벅 한 걸음씩 오르며 끝내 정상에 다다랐을 때의 희열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멋진 풍경들은 또한 힘듦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었다.


산행을 통해 나는 도전과 성취의 기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꾸준히 산을 오르며 정상을 향해 나아갔던 기억들은 살아가는 데 좋은 바탕이 되었다.


산의 매력을 알고 나서부터는 아버지 없이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산’이란 존재는 어느새 내 삶 속에서 여러 순간을 함께 해 온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생각이 많을 때나 산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결혼 후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산행이 더욱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너무 싫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기도 하다.


'이제 칠순이 넘은 아버지와 산에 또 갈 수 있는 날이 있을까?'


내친김에 이제는 내가 먼저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산행하자고 말씀드려야겠다. 힘에 겨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실까.


"오늘은 안 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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