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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동화책 읽기 작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

by 아카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아이는 영어학원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반을 배정받았다.


영어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아이에게 주지 않기로 아내와 다짐했었는데, 너도 나도 달리는 학군지 속에서 우리 아이만 평화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어 동화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아이에게 조금씩 변화를 줘 보기로 했다.


https://images.app.goo.gl/3PppuNBZ36x8cdbP9



그래서 고민 끝에 작은 작전을 하나 세웠다. 우선, 포도알 30개가 그려진 일러스트를 출력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이 포도알을 다 채우면,
만 원을 줄게.


조건은 단순했다. 영어 동화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포도알 하나를 채울 수 있고, 모두 채우면 용돈을 줄 것이고, 그걸로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아이도 처음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영어 동화책을 권하면 마지못해 한두 장 넘기다 말던 터라, 이번에도 비슷한 반응일 거라 생각했다.

@pixabay


하지만 하루도 지나기 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빠, 나 여기까지 읽으려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어제까지 한 권도 안 읽던 아이가 갑자기 다섯 권을 읽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아 직접 확인해 보니, 정말 책을 다 읽고 내용을 설명해 줄 정도였다.


보상이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 걸까?
아니면 단순히 게임처럼 즐기는 걸까? ​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가 자발적으로 영어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아이는 매일 영어 동화책을 찾아서 읽고 있다.


처음에는 용돈이 목표였겠지만, 포도알이 채워질 때마다 점점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더 생기길 바란다.

@pixabay



그러고 보니, 어릴 적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한문 공부할 때, 글자를 많이 외우면 작은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선물 때문이었지만, 나중에는 한문 공부 자체가 익숙해졌고 재미까지 붙었던 것이었다. 비슷한 과정으로 우리 아이도 영어책 독서 습관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물론 잘 알고 있다. 물질적 보상이 동기부여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첫걸음을 뗄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것 같다. 지속적인 걸음을 위한 동기부여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야겠지만.

@pixabay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살짝 당한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계획했던 목표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용돈이 주된 동기가 된 것 같다.


'이 방법이 옳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책을 읽고 나서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아빠, 이 책 엄청 재밌어!


처음에는 보상 때문에 시작했어도, 영어책 읽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면, 일단 초기 목표는 달성된 걸로 봐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포도알이 다 채워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아이는 계속해서 영어책을 읽을까?

아니면 포도알이 모두 채워지기 전에 멈춰버릴까?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첫걸음은 성공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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