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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Oct 18. 2024

갑질과 을질, 그 경계선 상에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할 때


이전에 11년간 근무했던 부서는, 회사에서 별동 부대 같은 존재였다.

본사 협의사항이 상당히 많았고, 본사 담당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이 녀석들, 전화 되게 안 받네.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 연결도 거의 되지 않았다. 바쁜 건 알지만 통화를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때로는 거래처보다 그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다.

그래도 당시에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갑을 관계 형성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5년 전 본사 주요 부서로 발령 났다.

이전 부서에서의 마지막 퇴근길 버스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


​기억 속 본사 담당자를 떠올리며, 그들과 똑같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장과 원활한 소통을 하며 많은 역할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이곳에서도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전국에서 쏟아지는 전화 또는 메신저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은 야근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민원이나 예외 상황이 발생하면, 골키퍼처럼 낭떠러지에 홀로 서서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쑥스럽지만 사내 게시판에는 전국의 직원들로부터 칭찬 릴레이 댓글이 70여 개가 달렸다. 사장님을 포함, 여러 임원들로부터 직접 축하와 선물도 받았다. 이제 사내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즐거운 것은 그때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부탁하면 다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내 호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르는 척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부탁하는 사람들, 본인 일만 가장 중요한 사람들, 본인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발 빼는 사람들, 대뜸 전화해서 고성부터 지르는 사람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나 역시 사람인지라, 자꾸 속상한 일을 겪게 되면서 처음 다짐했던 것들도 희미해져만 간다. 그때 당시 본사 담당자들의 입장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뉴스에서 한참 '갑질'대해 연일 보도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보면, '을'의 위치에만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갑'이었다. 지금껏 생활하며 단 한 번도 '갑질'한 적이 없다고 믿지만, 그것은 내 주장일 뿐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본인이 '을'이라며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오히려 못되게 구는 경우도 종종 봐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본사 밖에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반대로 '을질'한 적은 없었나?
나는 100% 떳떳하다고 할 수 있나?


모든 게 각자의 인성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갑을 관계 명목상인 것일 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바탕되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건 아니었을까.


생산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오래 지속하고 싶다면,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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