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나를 위한 선물
능소화를 보면 여름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꽃이 화사함으로 세상을 물들일 때, 능소화는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가장 뜨거운 7~8월이 되고 봄꽃이 지고 나면, 주황빛 꽃송이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다.
능소화를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계절을 알아채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 30°c가 넘고 더위가 시작되어도, 이 꽃이 피기 전에는 완전한 여름이 아닌 것 같다. 내게 있어 능소화는 여름의 완성자이자,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존재다. 오렌지색, 때로는 연한 살구색의 능소화의 모습은 여름 하늘의 석양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능소화는 장미처럼 눈길을 빼앗지도, 수국처럼 풍성하게 피어나지도 않는다. 담장이나 벽을 타고 조용히 햇빛을 향해 오르며, 때가 되면 그 빛깔을 펼칠 뿐. 화려한 색을 지녔으면서도 과시하지 않는 것, 능소화의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
묵묵히 시간을 견디다가, 가장 뜨거운 여름에 꽃을 활짝 핀다. 다른 꽃들이 더위에 지쳐 시들 때, 능소화는 더 강렬하게 빛난다.
능소화를 보고 있으면,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여름이 힘들어도,
이 계절을 그냥 지나치지 마.
잠깐의 빛을 놓치지 마.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숨 막히는 공기, 푹푹 찌는 날씨, 잠 못 이루게 하는 열대야.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가 여름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게 있다면, 그중 하나가 능소화일 것이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무심코 지나던 길에서 담장 너머 고개를 내민 능소화를 발견하는 그 순간은 내게 일상 속 작은 기쁨이다. 그리고 매년 여름, 나는 설렌다. 이 꽃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능소화는 매년 여름, 나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조용한 선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