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마음에 제일 무거운 건 뭘까?(1)

무거운 마음, 가족 사이

by 아카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건 뭘까. 그것은 바로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양가 부모님과 아내, 가족들까지 모두 챙기고 싶은 마음과 다른 현실. 늘 분쟁 없이 모든 걸 챙기고 싶었지만, 내 바람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흘러만 갔다.


일단 우리 집 이야기를 하자면, 8남매인 아버지 형제들은 명절마다 할아버지 댁에 모였다. 식탁은 늘 북적였고,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맏손자로서 나는 가족들의 온기를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행사에는 모두 함께 참여하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누는 것은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 후에도 같은 기대를 가졌다. 아내와 함께 가족의 따뜻함을 나누고, 우리 아이도 그 속에서 유대감을 쌓길 바랐다.

어린 시절의 아카



하지만 처가는 달랐다. 아내는 독립적이고 자기 방식대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처가는 전통적인 가족 문화와 거리가 있었고, 장인 장모님은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큰 성공을 이루셨다. 그리고 아내와 처남은 슬하에서 미국 유학을 통해 서구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결혼 전에는 사랑만으로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결혼 전에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씩 올라왔고 그로 인해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중 대표적인 게 가족행사와 명절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은 본가로 자주 내려와 우리 집 문화에 맞춰주길 바라셨다. 그리고 나는 최소한 양가의 경조사는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가는 한 번도 나를 결혼식이나 가족 행사에 일절 부르지 않았다. 딸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명절조차 언제 오냐는 말씀조차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시니까.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는 딸과 사위를 배려해 주신 마음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만, 반대로 아내에게 (차로 세 시간 이상 걸리는) 본가에 자주 가자고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우리 집은 오빠를 부르지 않잖아?
왜 오빠네 집만 자꾸 우릴 부르는 거야?


갈등은 시작은 항상 이랬다. 너무 정반대의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갈등을 겪으면서, 외려 장인어른 장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명절 때마다 본가에 가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내 기준이었을 뿐, 아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본인 집(처가)에도 잘 가지 않는 아내에게, 명절만이라도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하지 않느냐고 설득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가뜩이나 평일에 야근이 빈번했던 나였다. 그래서 명절만큼은 온전히 우리 시간을 갖자는 아내의 이야기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언제 내려올 거냐는 이야기를 하시는 본가의 부모님과 아내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했고, 잦은 다툼으로 이어졌다.





글을 쓰며 돌아보니, 마음속 혼란은 단순한 다툼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기준과 가치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나 자신 때문이었다. 양가 부모님과 아내를 동시에 이해하려고 했던 노력은,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모든 걸 다 맞추려 하기보다, 지금 내가 느끼는 피로와 답답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내게 필요한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 한편에 쌓인 무게를 느껴본다. 그리고 천천히 다짐한다. 오늘의 깨달음을 내일에도 이어가며, 작은 배려와 다름을 인정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괜찮다. 내려놓아도 된다. 나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가족과 나 사이, 아내와 부모님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려놓음이 답일까, 아니면 다른 방식이 있을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나에게 있다는 것. 늦었지만 지금에서라도 균형을 찾아가고 싶다. 완벽히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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