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서 있는 마음, 침묵의 무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 중 하나는 바로 '말'이었다.
자주 내려오지 않아 보고 싶었던 마음을, 부모님은 "내려오기 싫어서 안 왔지?"라고 경상도식으로 돌려 말하셨다. 의도는 알았지만 아내에겐 상처가 될 말이었다. 아내는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두었고, 그런 순간마다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명절 아침, 막히는 도로를 뚫고 새벽 일찍 본가로 내려간 날이었다. 피곤한 우리는, 잠시만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김없이 우리를 깨우셨다. 아내는 눈빛으로 "왜 이렇게까지 우릴 배려하지 않으시지?"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안다. 쉴 때 쉬더라도, 최소한 함께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었던 게 부모님의 마음이었다는 걸.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아내의 표정은 여러 번 굳었고, 밤에는 어김없이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부모님의 속뜻을 설명하려 해도, 오히려 편드는 꼴이 되어 내 말이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관계의 긴장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을 풀어줄 역할이 바로 내게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 말투가 익숙했기에, 뭐가 문제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늘 외부 사람이었다. 같은 말도 내겐 상처가 되지 않았지만 아내에게는 예리한 칼날이 되었다. 나는 그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넘겼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침묵한다는 건 외로움을 더 짙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내 고집 때문이었다. 착한 아들로 남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는 내 방식대로 상황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내가 느낀 답답함은 부모님의 말 때문만이 아니라, 내 침묵과 고집이 더해져 만들어진 무게였다. '착한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듬직한 내 편'보다 우위에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그걸 깨닫지 못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그녀의 예민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마음속 어딘가에서 "내가 조금 아내를 더 배려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를 무시할수록 마음의 무게는 더 단단해졌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아내는 마음속에 감정을 쌓았다. 아내의 날카로운 눈길과 부모님의 진심 사이에서, 나는 답답함과 불안을 쌓아만 갔다. 그 속에서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은 없었다.
자식을 낳아보니 부모님을 향한 애틋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 그래서 '가족은 함께'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면, 달리 생각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나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고, 삶을 함께 꾸려가는 사람이니까.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당당하게 아내 편에 서지 못하고, 고집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조금 더 솔직히 말하지 못한 것이 '무거움'의 뿌리였다.
이렇게 글로 털어놓으니 마음은 무겁지만, 동시에 조금 가벼워진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마음을 먼저 지켜야 하는가였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때로는 고집을 내려놓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가볍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그걸 인정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변화이자, 무게를 덜어내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