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미안함 사이에서
나는 가끔 부모님을 떠올린다.
다섯 살 무렵, 손님이 사 온 바나나를 먹고 체해서 하룻밤 사이에 두 번이나 응급실을 오갔던 기억이 있다. 새벽마다 나를 업고 병원을 오가던 아버지와, 곁에서 손을 꼭 잡고 있던 어머니.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순간이 그저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아버지는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이 삼십 년을 회사에 몸담았다. 퇴직 후에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시며, 시장으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적은 월급 속에서도 살림을 키워내셨고, 지금은 해당 지역에서 서예가와 문인화가로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 계신다.
어린 시절, 8남매의 시댁과 5남매의 처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오던 어머니를 보며, '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 막연히 배워왔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세상에는 참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가는 '내가 잘 되어야 가족도 산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우리 부모님은 늘 '사람이 먼저'라고 하셨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치관이 달랐다. 그 차이 속에서, 나는 오히려 부모님의 방식이 얼마나 단단하고 따뜻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고 제한된 세상을 견디며 살아오셨다. 그 시절, 선택의 폭은 좁았고 배움의 기회 또한 지금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못다 한 배움이 아쉬웠을 테고,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참 많았을 것이다. 그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셨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 나와 동생이 단 한 번도 집안의 불안을 걱정하지 않고 자라올 수 있었던 건, 두 분이 그렇게 버텨주신 덕분이니까.
아버지는 늘 무뚝뚝했고, 어머니는 고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계셨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밥은 차려져 있었고,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린 마음엔 그것이 곧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가다 보니 이제야 조금 알겠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들, 그때는 당연하다 여겼던 사랑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를.
하루가 끝나고 간신히 저녁을 챙기고 앉은 늦은 밤, 거실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소파 끝에 앉아 TV를 보시면서도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식탁 위에 내일 아침 반찬으로 쓰일 채소를 다듬고 계셨다. 서울 생활하는 아들을 위해 뭐라도 해 먹이려는 마음.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아니, 사실은 익숙했다. 늘 그래왔는데, 내가 그것을 익숙한 풍경이라 여기며 지나쳐왔던 건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몰랐다. 그게 어떤 무게였는지. 어린 시절엔 부모님이 항상 거기 계신 줄만 알았다. 늘 당연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내가 학교에 가도, 학원을 다녀와도, 밤늦게 집에 돌아와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부모님의 얼굴에서 세월이 보인다. 손등의 굵어진 핏줄, 조금 굽은 어깨, 예전보다 빨라진 숨소리. 그리고 하얘진 머리. 모든 것이 말없이 전해온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일찍 이런 마음을 깨달았더라면, 부모님께 더 따뜻하게 대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음이라는 건 늘 제때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때론 후회가 씨앗이 되어, 다음 계절의 다정함을 키워내기도 한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이 깨달음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는 것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 속상할 때가 많다. 아내와의 갈등을 잘 조율하지 못하고, 아이에게도 때로 부족한 부모 노릇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그 단단한 버팀목과 사랑을, 아직 충분히 닮아가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한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금씩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하니까.
작은 말 한마디, 한 번의 다정한 손길이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아이에게 닿기를. 오늘의 감사함과 미안함이 내일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우리 가족 모두 이제는 더 편안하고, 웃음꽃 피는 날이 가득하기를.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말할 수 있을까.
그때 참 고맙고 죄송했어요.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묵은 세월의 굳은살을 녹여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