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내려놓는 연습
특별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마음 한쪽이 무겁게 남아 있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화해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내 불안을 잠시라도 덜고 싶은 걸까?'
얼마 전에도 아내와 심한 의견 충돌한 적이 있었다. 아내를 보면서, 나는 한참 고민했다.
'중재를 해야 할까,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두어야 할까?'
순간순간 마음은 흔들렸고, 선택의 기준은 점점 모호해졌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화해를 바라는 마음과 단순히 불안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예전부터 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단 해결부터 하려고만 했다. 불편한 상황을 잘 넘기지 못했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가족 사이의 문제에서도 늘 중재자가 되고, 모든 것을 조율하려 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게 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게 꼭 문제해결, 모두가 웃는 화해의 순간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저 내 마음의 불안과 답답함을 덜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화해는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작은 틈을 메우는 과정이다. 반면, 불안의 해소는 내 마음의 평온을 우선하는 행동이다. 상황을 일단 정리하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화해'라는 이름으로 불안을 숨기곤 하니까. 나 역시도 그랬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상대방보다 내 마음이 먼저였다.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조금 떨어져서 상황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심적 여유를 찾게 되니, 작은 평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화해를 이끌어내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 불안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게 먼저가 되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가 만족하는 상태'라면, 그건 사실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진정 내게 필요한 건 '불안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나는 화해를 원하는가, 아니면 내 마음속 불안을 내려놓고 싶은가?'
'아니면 지금 이런 모습이 불안한 건, 자존심이나 남들의 시선 때문인가?'
'지금은 불안을 조금 덜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화해는 그다음의 문제다.'
한때는 부족한 내 모습에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해도 길이 조금씩 보인다는 것을.
그런다고 갈등이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갈등이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걸 맞추지 않아도, 강요하지 않아도, 불안을 덜어내는 연습. 그것이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변화다.
괜찮다. 화해가 아니어도, 마음의 평화는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도 난 속삭인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내가 내린 선택이 최선이라는 믿음과 함께,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회사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사회생활 속 여러 자리에서도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가족 안에서 느끼는 불안과 고민은 그 모든 순간과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상황마다 완벽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인정하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이 아닐까?
삶에는 정답이 없겠지만, 내가 선택한 지금 방식이 이 순간의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도 역할과 책임은 있지만, 그걸 무리하게 끌어가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 도망치지 않되,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솔직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며 마음을 돌보는 것. 그 과정을 통해 평온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결국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길임을 이번 글을 쓰며 다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