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직군으로 지원했는데,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by 아카


나는 서울 소재 모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졸업을 앞두고서도 내가 보험회사에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계리사나 각종 자격증 없이도 취업이 가능했던, 어쩌면 마지막 세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수능 100만 명 시대였다. 또래는 많았고 경쟁은 치열했다. 입사지원서만 해도 100곳 가까이 썼던 기억이 난다. 그중 인연이 닿아 들어온 곳이 지금의 회사였다.


대학 3학년 무렵부터 학벌이나 스펙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 불안을 상쇄하고 싶어 학과 최초로 학석사 연계 과정을 밟아 5년 만에 석사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의 조급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입사원서를 작성하던 중, 유독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지방 영업담당자 우대


지방 출신이었던 나는 그 문구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그렇게 영업직군으로 지원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이미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가능하다면 근무지도 본사이길 바랐다.

다행히 신입사원 연수 막바지에 인사부 면접이 있었다. 게다가 연수 과정 중에는 '선배와의 시간'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에는 내가 가고 싶었던 부서에서도 나왔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본사 근무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방 영업부가 아닌, 서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다만 그 부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TM 영업을 담당하는 본부였다.

보험사는 보험설계사를 통해 영업하는 곳이라는 인식밖에 없던 나에게, 전화로 이루어지는 영업의 세계는 낯설고도 새로운 영역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두려움보다는 묘한 기대감이 먼저 들었다. 대학 시절,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며 걸려온 전화에 넘어가 영문판 타임지를 2년이나 구독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럼에도 이 새로운 세계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뎌 보기로 했다.


같이 연수를 받았던 입사 동기들 대부분 전통적인 조직으로 흩어졌다. 상품부, 기획부, 그 외는 모두 영업부. 누가 봐도 '보험회사다운' 부서들이었다. 다들 정해진 레일 위에 올라탄 듯 보였다. 반면 나는 혼자만 별동 부대로 빠진 느낌이었다. 같은 회사에 입사했지만, 출발선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괜히 긴장됐고, 더 잘 해내고 싶었다. TM 본부는 회사에서도 다소 이질적인 조직이었다. 현장과 가장 가까이 호흡하면서도, 동시에 본사 조직의 한가운데에 있는 곳. 전통적인 영업의 영역을 벗어난 새로운 시장. 그곳에서는 숫자와 사람, 실적과 민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했다.



보험사에 입사했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늘 비슷했다.

영업하는 거야?
아니요, 본사에서 스텝으로 일해요.


그럴 때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변명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아마 나 스스로도 '영업'이라는 단어를 조금은 거리 두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실적을 쌓아가는 영업인들을, 오히려 진심으로 리스펙 하게 되었다.


이곳에 오면서, 원했던 서울 발령은 이루었지만, 동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부서는 아니었다. 나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버텨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아직 몰랐다.

그렇게 나는 동기들과 다른 출발선에서, 전혀 다른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그 '다름'이 이후의 나를 가장 오래 만들어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