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교육을 하며, 나도 다시 배웠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서

by 아카


언제부턴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참 두려웠다.


대학원 시절엔 조교 역할도 섰고, 더 오래전에는 웅변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사람들 앞에 말해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하는 일은 부담이 되었고,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입사 전 1차 면접에서도 그랬다. 발표를 하기도 전에 긴장이 몸을 눌렀다. 그 모습을 본 면접관이 농담처럼 말했다.


너무 긴장되면 노래 하나 불러보세요.


하필이면 그 순간, 떠오른 노래는 벅의 '맨발의 청춘'이었을까? 나는 면접장 한가운데에서 발을 힘차게 굴리며 노래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찔한 장면이지만,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부족한 상태 그대로 회사에 들어와, 그 부족함을 안고 일을 시작하게 된 순간이.



입사 후에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부서 배치받자마자, 선배가 보험설계사 교재 한 권을 건넸다. 업무 빨리 익히라고 준 줄 알았는데, 며칠 뒤에 그 교재로 실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대상은 보험설계사 시험 응시자들이었다. 실무 경험도 부족한 신입사원이, 생계를 걸고 시간을 낸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자리였다.


결과는 뻔했다. 말은 더듬거리며 자주 막혔고, 설명은 교재를 읽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 시간을 겨우 버텼고, 남은 시간은 수강생들의 불만만 남긴 채 선배에게 넘겨야 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며 갖가지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말 잘하는 방법'보다, '이런 자리에 다시 서지 않는 법'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도피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필요에 따라 반복되었고, 몇 년 뒤 나는 다시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다. 바로 진급자 교육 자리였다. 수많은 선후배와 동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였다. 예전의 기억들이 그대로 떠올랐다. 진행자가 박수 유도하며 분위기를 살려주었지만, 그날의 어색함 또한 오래 남았다.



그래도 반전의 기회는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입사 후 11년 간 시스템 운영 업무를 맡았다. 콜센터 상담원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 및 운영을 했고, 50곳이 넘는 콜센터 오픈과 폐쇄를 경험했다. 녹취가 생명인 TM 영업에 시스템이 없으면 일 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만큼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누군가는 설명해야 했고, 누군가는 앞에 서야 했다.

처음엔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반복되면서 달라진 건 있었다. 깊이 있게 업무를 알게 되었고, 질문의 맥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말을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동안의 시간과 경험이 대신 설명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에 대한 두려움 가득했던 내 모습은 조금씩 잊혀갔다.



지금 부서에서도 난 매년 몇 차례 교육을 진행한다. 이젠 더 확대되어, 전 임직원이 대상이다.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부담스럽지만, 예전처럼 도망치지 않는다. 내가 해온 일과 버텨온 시간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은 사내 우수 강사로써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내 업무를 누군가에게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필요에 의해 맡겨진 역할들을 감당하다 보니 나도 성장한 게 아닌가 싶다. 내게 있어, 말은 목표라기보다는 결과였을 뿐이니까. 생각해 보면, 극복하겠다고 거창하게 결심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다 보니 그 두려움 대신 자신감이 채워지면서 그 트라우마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오늘의 글은 강사 성장기도, 두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보험사에서 일하다 보니, 준비보다 먼저 책임을 맡게 되었고 그걸 감당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조금씩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내가 상담원 교육을 하면서 진짜 배운 건,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는 태도와 감정을 다루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배움은 교육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민원 대응과 현장과의 소통 속에서, 그때 배웠던 태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