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성장이 전부다.
2025년 11월 6일 아침밥
자연의 것들은 감정에 우열을 매기지도, 행복의 순위를 정하지도 않는다. 자연은 미래를 모른다. 지금의 성장이 전부다.
요새 일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으며 피지컬 아시아를 틈틈이 보고 있어요. 나라마다 대표단을 꾸려 고문에 가까운 과제를 수행하는데요, 어찌나 팀워크가 끈끈한지 그 어려운 일을 함께 해내는데에서 가족 이상의 애틋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도파민 버튼을 가까스로 누르고 다음날을 위해 자려고 누웠다가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켰는데 하정작가님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어요.
문장밥으로 벌써 두 번이나 차려드린 책 <이상한 나라의 괜찮은 말들>의 오디오북 제작 완료 소식에 기대된다고 호들갑을 남겨두었거든요.
제가 다음에 작가님의 목소리로도 담아보고 싶다고 소망을 말씀드리자, 조만간 같이 문장 낭독하고 기록해 보자고 작가님이 유튜브 링크 하나를 보내주셨어요.
https://youtu.be/FA-2FN4abwE?si=RAaHhM4wIZjhosWH
작가님의 책 속 페이지 낭독 후 책에 어울리는 음악이 이어지는 플레이리스트였어요. 문장의 낭독을 듣다가 너무 좋아서 보니 제가 처음으로 만났던 하정 작가님의 책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가다>의 문장이었어요.
나는 우리를 바라보며 '가족'과 '가족 아님'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태어난 가족은 신이 주는 공동체지만 친구, 직업, 지역사회는 내가 고른 가족이다. 그리하여, 자발적인 선택 안에서 늘 충만하고 즐겁게 사느냐고?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누구와 함께이건 철저히 쓸쓸하고, 내일이 기대되지 않고, 오해하고 충돌하고 척지는 순간을 꾸준히 맞닥뜨린다. 그것은 자연스럽다. 자연에는 나비도 있고 뱀도 있다. 과실수도 있고 독버섯도 있다. 공을 들인 탄생도 있고 허무한 소멸도 있다. 스반홀름에서 나는 자연을 조금 이해했다. 자연의 것들은 감정에 우열을 매기지도, 행복의 순위를 정하지도 않는다. 자연은 미래를 모른다. 지금의 성장이 전부다.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 (2020, 좋은여름) 에서
내가 선택한 가족과 '자연'스럽게 당장의 생장에 집중하기. 자려고 눕는 마음이 어찌나 편안해지던지요. 지난 하루의 종일 가득 찼던 소란한 목소리들도, 다가올 한 주, 한 달 후의 일들을 해낼 걱정의 두근거림도 잔잔해지는 순간.
누구와 함께이든 그곳엔 독버섯도, 나비도, 뱀도 있다는 것. 공을 들인 탄생도, 허무한 소멸도 있다는 말이 특히 위안이 되었습니다.
자연은 미래를 모릅니다. 오늘의 저도 당장의 하루를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생에 오롯이 머물고 온 마음을 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