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언덕 같이 숨찬 계절을 지나는 시원 님께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번 독감이 정말 많이 아프고 이름처럼 독하고 힘들다고들 하더라고요.
오늘은 어쩜 이리 10분의 시간도 나질 않는지, 꾸준히 계속 바쁜 하루였어요. 조금씩이라도 시간이 나면 그 틈으로 편지를 써야지 했는데, 몇 자 쓰다 보면 주문이 들어오고, 손님이 오곤 하더라고요.
어젯밤 갑자기 연락드려서 합평 모임도 미루었는데, 너그러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이른 아침 합평 모임 미루고 아침잠 두 시간 더 자고 출근한 덕분에요, 아주 숨 넘어갈 위기의 몸 상태로도 바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답니다.
시원 님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본 질문에 여러 가지 요소가 나열되는데, 가장 마지막에 적어주신 쉼이라는 단어가 어째 가장 눈에 먼저, 크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곤 기꺼이 이번 주에도 용기 내어 꺼내주신 시선집에서의 문장이 제 맘을 울렸어요. 아니 이번엔 읽으면서 가슴이 콕콕 쑤시고 아팠어요.
할 수 없다고
지쳤다고
사라지고 싶다고
한 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켰던가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켰을지, 그 마음이 너무 느껴지고 알 것 같아서요. 저도 지난여름, 작년 여름 계속 그 마음속 목소리를 쌓고 체한 듯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꼴딱 넘어가기 직전의 상태로 지내왔어요. 그래서 그 마음이 뭔 지 알 것 같아서, 그때의 마음이 생각이 나서 울컥했어요.
어쩌면 그러고 나서도 저에게 마음의 쉼은 사람 덕분에 찾아왔지만, 몸과 생활의 쉼은 좀처럼 아직 오지 않은 터라, 연의 마음을 쓴 저와 연의 마지막 숨과 같은 요청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시원 님, 우리 둘 모두에게 쉼이 절실히 필요할지 모르겠어요.
시원 님이 마지막 숨소리를 알아차리게 된 것도 정말 다행이에요. 실은 제가 지난 편지에 말씀드렸던 새로운 일을 할 기회 있잖아요. 편지로는 기대와 설렘을 써 비치고 실제로 해보려고 했는데, 어쩐지 이틀 삼일이 지나가면서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좋은 기회인 건 맞지만 누굴 위한 좋은 기회일까. 무엇에게 좋은 기회인 걸까. 돈을 벌 기회인 걸까, 내 능력을 누군가에게 증명할 기회인 걸까. 내가 돌아오는 26년도에 정말 원하는 생활의 모양은 무엇일까. 어떤 것으로 채우고 싶을까 하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충분히 읽고 쓰고, 대화하며 운동하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드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회의적인 방향으로 마음이 좀 틀어졌어요. 그런 데다가 마침 역할과 비용을 정하는 중요한 순간에서 결정적으로 회신이 늦어지더라고요. 참 신기하죠? 그래서 저도 지금 일단 임시 보류 상태로 다음 주쯤 결과를 낼 예정이랍니다.
세상에, 쪼개고 쪼개어 편지를 몇 자씩 적다 보니 자정이 되었어요! 하루 종일 쓴 편지인 만큼 생생한 쉼의 호흡을 진하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보내드리기로 한 책은 반드시! 돌아오는 화요일에 발송할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셔요. 수린에게 선물 받은 책에서 시원님께도 전하고픈 문장이 있어 아껴두었다 문장밥에 쓰지 않고 마무리 인사말로 대신합니다.
바쁘게 지나온 계절들 사이, 미처 챙기지 못했던 감정들과 서둘러 지나쳤던 풍경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쉬어가도 괜찮다는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온전히 허락된다는 안도. 풍경은 쉼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내 안에 다시 쌓아 놓는다.
김로로 「계절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