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대신할 수 없어
12월 25일 목요일 문장밥
크리스마스 아침이네요.
사랑으로 세상에 왔던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는 날이죠. 저도 그동안 그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이제 교회에 가서 축하하진 않지만요. 그럼에도 이 날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수 없어.”
오늘의 문장은 소피 카르캥의 『글쓰는 딸들』에서 만났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콜레트 세 작가가
그들의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는지, 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저술한 전기 입니다.
세 사람은 저마다 딸이고, 유명 작가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다.
1871년에서 1914년 사이, 세기의 전환기에 태어난 세 사람은 주관이 뚜렷한 저항자라는 점 말고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한계나 표준을 넘어서는 어머니, 말하자면 어머니 이상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어머니들은 군림하거나, 지나쳐서 넘치거나, 모든 것을 감싸서 끌어안으려 했다. 융합하거나, 지배하거나, 조종하려 했다. 그들은 딸을 사랑했다. 무척 사랑하거나,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했다. 세 작가는 서로를 알았고 이따금 마주치기도 했지만,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 책은 이 세 딸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붙인, 거창하게 말해 3부작 전기이다.
그 중 오늘 소개한 문장은 세 명의 작가 중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야기 속에서 만났습니다. 태어났을 때 몸이 아파져 딸과 떨어져 요양을 떠난 엄마와의 단절로 뒤라스는 다시 채울 수 없는 깊은 결핍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온 문장 입니다.
작가는 그녀가 어머니의 사랑을 다른 사랑(연인, 성공, 명성, 자유)으로 대체하려 했지만 끝내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래서 그 결핍과 잔여 감정이 글이 되었던 게 아닐까 헤아립니다.
사랑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구멍으로 남은 게 아니라 문장으로 옮겨 간 것이 아닐까요?
단순한 ‘어머니와의 애착’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했거나, 과도하게 의존적이었거나,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거나, 딸로서의 역할과 작가로서의 욕망이 충돌했던 그 복잡한 관계 자체가 글쓰기를 밀어 올린 힘이었다는 죠.
그래서 여기서 인용되는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수 없어” 라는 문장은 연애나 로맨스보다 훨씬 넓은 사랑의 정의로 결핍된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삶에 남는다는 뜻이니까요.
진부하게 읽힐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크리스마스에 다시 사랑을 말하고 싶은 이유는,
사랑이 가장 쉽게 말해지는 날에 조금 더 깊게 얘기하며,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사랑을 미루지도, 흘려보내지도 않는 하루가 되길 바라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