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모든 것이 잘되고 있었다. 나만 빼면
쓰기 위해 쓰는 휴가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떠난 집필 여행의 기록입니다. [J]와 [ㅈ]가 함께 쓰는 글이라, 같은 제목의 글이 두 편씩 업로드됩니다. 에피소드 제목은 그날을 가장 잘 담은 노래이니 들으며 읽으시길 권합니다. - ㅈ
J와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던 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크게 고함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일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나는 놀란 J의 손을 꽉 잡고 달래주었다.
"많이 놀랐지? 괜찮아?"
움찔하며 마주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것과 그 말 사이에 1.4초 정도의 공백이 있었지만, 다행히 내가 깜짝 놀랐다는 사실을 나보다 더 많이 놀란 J가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의연한 척에 성공한 나는, J를 달래주기 위해 저 남자 무슨 일일까, 하고 말을 꺼냈다. 전에도 종종했었던 추리 놀이다. 나는 남자가 엄청나게 화난 상태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런 가설을 세워봤다.
"남자는 부인과 통화하고 있는 거야. 부부싸움으로 화가 난 부인은, 혹은 남편이 무서웠던 부인은 캐리어에 짐을 욱여넣고 집을 나온 거지. 캐리어를 끌고 친정으로 가던 부인을 남편이 뒤따라 왔고, 놀란 부인이 캐리어를 두고 도망갔어. 남편은 그 캐리어를 들고 집 앞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전화로 소리친 거지. 빨리 돌아오라고."
반면 J의 생각은 이랬다.
"남자는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거야. 그러니까 캐리어를 들고 있는 거지. 남자는 예정된 일정보다 일찍 도착했어. 집에 와봤더니, 불은 꺼져있고, 부인이 없는 거야. 뭔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한 남편은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불같이 화를 낸 거지. 어디 있느냐고."
같은 상황을 겪고, 같은 재료로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든 J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딱 이 정도 차이구나, 라고. '부부싸움 -> 친정으로 도망'이라는 뻔하고 지루한 상상을 한 내가 현실적인 타입이라면, '여행 -> 행방불명'을 떠올린 J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차이가 서로를 빛나게 해주었지만, 한쪽이 너무 많이 나가는 경우에는 어긋나기도 했었다. 이 날도 그런 경우였다.
토요일은 광화문 때문에, 일요일은 낮잠으로 독립출판물 글을 하나도 못 쓴 나는 첫 평일이 되자마자 조바심이 났다.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불안감이 나를 무섭게 덮쳐왔고, 현타를 느낀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못다 한 회사일을 처리하느라 피곤해하는 J를 재촉하고 다그치고 만 것이다.
J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얼굴에 "서운해" 라는 글자가 써붙인 듯 선명하게 보였다. 회사일과 내 조급함에 치인 J가 지쳐 잠들고, 나는 혼자 앉아 글을 썼다. 아니, 쓰려고 했지만 하나도 쓰지 못했다. 이런 상태로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키보드에 양손을 가만히 두고, J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후회했다. 우리는 여행 일기를 매일 쓰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J는 여유 있게 같이 보내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그런 여유가 없는 내가 문제였다. 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그보다 더 중요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 조급함만 빼면,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걸.
Hold on
Cause everything's coming up ro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