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볼링을 볼링볼링
쓰기 위해 쓰는 휴가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떠난 집필 여행의 기록입니다. [J]와 [ㅈ]가 함께 쓰는 글이라, 같은 제목의 글이 두 편씩 업로드됩니다. 에피소드 제목은 그날을 가장 잘 담은 노래이니 들으며 읽으시길 권합니다. - ㅈ
결전이 아침이 밝았다. 여느 날과 같이 알람을 꺼놓고 맘껏 잔 우리는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이 볼링 대결을 하기로 한 그날이기 때문이다.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는지, 팩트를 두드리는 J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볼링공 굴리기 좋은 날이군'.
얼마 전 일본 초등학교에 방문한 핀란드인 교장이 달리기에 순위를 매기는 걸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좋은 운동을 가지고 아이들끼리 경쟁하게 해서 운동을 못하면 꼴찌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가 생기는 게 아닌가요? 순위 따위 올려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라고?'
볼링장으로 가는 길에 칼국수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J는 연신 볼링 이야기를 했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나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J는 스스로의 볼링 실력을 기복이 심하다, 스페어 처리를 잘 못한다, 스핀을 못 넣는다는 말로 평가절하했다. 나를 방심하게 만들 작전인 것 같았다. 거짓말을 못 하는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스페어는 꽤 했고, 스트라이크도 가끔씩 한다고. 아무래도 내가 이길 것 같다고.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을 지나친 경쟁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점수를 매기고 등수를 정한다. 국영수뿐 아니라 예체능까지도 등수를 매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내 도발이 먹혔는지 J도 작전을 바꿨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고, 입볼링 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니 실컷 하라고 했다. 나중에 어떤 창피를 당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뭉텅한 이빨을 꺼내고 우스광스럽게 인상만 잔뜩 쓰는 초식동물 같은 느낌이랄까. 볼링 친 횟수는 J가 나보다 조금 더 많았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의 교육이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아래 엉망으로 치닫는 사이, 핀란드는 협동교육 혁명을 이뤄냈다. 핀란드에서는 성적표에 등수를 표기하지 않는다. 상대적 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는 그들의 교육철학은 '협동'을 강조한다.
우리는 입과 발을 부지런히 굴려 안국 볼링장에 도착했다. 3 게임 중 상위 2 게임의 점수를 합산해 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J는 시작부터 잔재주를 부렸다. 볼링 플로어에 내가 발을 한 짝 올려놨다며 집중이 안 된다고 얌전히 있으라고 했다. 심리적으로 나를 압박하려는 수작이리라. 나는 의도적으로 J가 볼 타이밍에 다리를 올려 견세이를 놨다.
우리는 50만 명을 경쟁시키기 위해 같은 시험을 보게 하고 1등부터 50만 등까지 한 줄로 세운다. 고작 하루, 한 번의 시험으로 미래가 결정된다. '객관성'으로 포장한 절대적인 점수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이 깡패는, 서열화를 정당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이 무의미한 경쟁은 매년 반복된다.
J는 아주 안정적인 자세로 살포시 볼링공을 굴렸다. 공은, 데굴데굴 천천히 굴러가 1 번핀 혹은 3번 핀을 때렸다. 사이드로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심각한 의혹을 제기하고 싶은데, 스페어 처리를 거의 못한다던 J는 꾸준히 스페어를 기록했고, 스스로 기복이 심하다더니 3판 모두 비슷하게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나를 속이기 위한 훼이크였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지금과 같은 무한 경쟁은 피해자만 무한히 양상 할 뿐이다. 더 이상 쥐어짜는 방법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이룰 수 없고, 설사 이뤘다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복이 심한 건 나였다. 느낌이 좋을 땐 스트라이크를 연속 2번으로 치다가, 개구멍으로 빠지기 일수였고, 사이드에 있는 핀만 연거푸 때렸다. 스페어 처리도 거의 못했다. 들쑥날쑥한 점수로, 3판 모두, 믿을 수 없게도, J에게 내주고 말았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경쟁에 지친 우리는 정해진 트랙만 벗어나면 책도 공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핀란드인 교장의 말처럼 경쟁의 치명적인 결함은 학습의 제 1 원칙인 '흥미'를 말살시킨다는 점이다.
볼링장을 나서며 J는 놀라울 정도의 속도와 농도로 나를 놀렸다. 입볼링 하다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그러니까 왜 까불었냐며. 나는 웃으려 했으나 웃음이 고장 나 있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피가 안 통하는지 손이 저려왔다. 왜 볼링 대결을 하자고 했을까... 집으로 가는 내내 J의 놀림을 듣고 또 들으며 생각했다.
이상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경쟁은 나쁘다!"
잘 들어 미안하지만 니가 보고 있는 것들은 꿈이 아냐
그리고 잘 봐 낯설겠지만 니가 보고 있는 사람이 진짜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