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도대체 이게 왜 신기한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기쁘자고 살지 않는데
삶이 행복하자고 사는 게 아님을 알고 나서 오히려 기쁨에 불이 붙었다.
기쁨 물질은 언젠가부터 내 존재들 사이에서 은근히 패권을 쥐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위로할 줄을 모른다(요즘 내 관심사 '위로').
"사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어? 너한테는 힘든 얘기를 잘 안 하게 돼. 말해봤자 모를 거 같아서."
친구의 저 한 마디는 내 깊은 곳에 칼집을 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그랬다. 지금은 내 친구가 그냥 당시에 힘들었구나 한다. 미국 속담에 'Hurt people hurt people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 준다).'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요즘 'Free people free people.'이라는 문장을 만들어놓고 뿌듯해 하고있다. 역사적으로 자유했던 사람들은 타자를 자유케 했으므로.
나는 지금 마흔이지만 대략 10년 단위로 다른 색채의 삶을 살았다. 기쁘자고 사는 게 아님을 알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고 고비를 여러 번 거치는 와중에 내 안에 기쁨 물질이 존재를 장악했다.
평생 쓰고 남을 마약을 내 안에서 발견한 느낌이었다. 멋대로 살다 보니 이리되었다. 사실 기쁨 물질이라는 단어를 적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맺히는데 하필 테이블 위에 티슈가 떨어져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 두루마리 휴지를 후루룩 낚아 채 온다. 와중에 휴지 잔여물이 눈에 붙을까 뾰족한 세모로 접어 봄에 물 오른 자작나무 수액 받듯 눈물을 졸졸졸 받는다. 눈물 하나도 이리 별나 빠지게 닦는 사람이 40년을 어떻게 이 세상에서 무사했을까. 이 눈물의 의미는 도무지 왜 맺히는지 알 수가 없는 데 있다. 이게 살아있다는 경이와 관련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설명은 못한다. 평생 몰랐으면 한다. 오직 알 수 없는 것들만이 내 삶에 유효하고 추구해 볼 만하다.
하루는 남편에게 고백했다(내 글에 자꾸만 남편이 등장하는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이 자화상을 그렸던 이유와 비슷하다. 거기 있으니까). 한 생에 납득되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지 않다고. 그게 직업이건 뭐건 간에 그렇다고. 남편은 알겠다 말하며 보름달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내가 만난 가장 큰 스승이다. 가장 큰 스승이 부부의 연으로 온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눈을 떴구나. 우와. 나는 도무지 밤새 숨을 쉰 기억이 없는데 하면서 커피를 내리며 혼자 또 살아있음의 잔치를 벌인다. ‘오늘 저녁엔 삶은 계란을 넣은 떡볶이를 만들어볼까? 고추장 말고 곱게 빻은 고춧가루로? 뭐? 하바네로도 하나 넣어? 멕시코적 매움은 뒤끝이 없고 입에서만 매우니까 괜찮아? 알았어!' 또 기쁨 물질이 분비된다. 뭔가를 만들어볼라치면 그렇다. 글이든 음식이든 글씨든. 창조에너지는 생명에너지니까.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나서 미지근한 물을 한잔 더 마신 후 아보카도 반쪽을 먹는다. 아보카도가 나무에 매달려 물과 햇볕으로 축적해 낸 각종 영양 성분을 홀라당 내 몸으로 만든다. 어제저녁에는 이름 모를 돼지가 자신이 평생 애지중지 길러낸 앞다리살을 턱 하니 내주었다.
다른 생명체를 이렇게 하루종일 잡아먹고사는 최상위 포식자. 그런 깊고 어두운 생리적 캐즘(chasm)을 지녔으니 봉우리도 그만큼 높겠지 위안 삼으며 기쁨 물질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