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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May 13. 2023

어머니인 상태

친구네 고양이




동갑인데 스승같은 친구가 있다.


친구는 사랑스런 아들 두 명을 낳은 어머니이자 아름다운 여성이다. 몇 달 전인가 공원에서 엄마 잃은 고양이가 이 가족에 합류했는데 오랜만에 봤더니 애기에서 어린이로 훌쩍 성장해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므로 창가 옆 바닥에 앉아 멍하니 햇살을 느끼며 속으로 '고양이 이리와~'를 외치고 있었다. 왠일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예뻐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났음에 당황한 고양이는 내 발 주변으로 살랑살랑 털바람을 일으키다 꼬리로 내 발목을 사악 감싸안으며 앉았다.


순간, 호흡에 무리가 올 만큼 좋았지만 티 내면 도망갈까 무시했다. 고양이의 궁뎅이는 내 쪽을, 시선은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열심히 반대쪽을 바라보며 좋아하지 않는 척을 오래 했다.


"고양이가 처음에 데리고 왔을 땐 잘 몰랐는데 날이 갈수록 너무 예뻐지는거야. 목에 목걸이도 생기고 볼터치도 있고 이마에 대칭형 무늬도 있고... 나 대칭 좋아하잖아... 여기 꼬리 봐바 무늬 너무 선명하지 않아?"


나는 '친구네 고양이가 참 귀엽네...' 정도로만 생각했지 저렇게 온 몸 구석구석 신기한 존재인 줄은 몰랐는데 역시 사랑하면 깊이 보이는 건가 싶었다. 친구가 말을 이어간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이미 그냥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고 예쁜데 저렇게 또 성장하면서 몸에 줄무늬를 만들어 내고 하는 게 너무 감격스러워."




집으로 돌아오는 프리웨이.

친구의 '그럴 필요가 없는데'가 도로 위의 차 지붕 마다 말풍선 모양으로 동동 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계속 떠올라 이 기분을 해소하고자 급기야 이렇게 적어본다.


오묘한 말이다.


이미 사랑해서 더 예뻐질 필요가 없다는 말 치곤 여운이 심하고, 딱 듣자마자 무슨 말인지는 대충은 알겠는데 왠지 자식을 낳아봐야 무슨 말인지 '온전히' 알 것만 같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 수중에(?) 자식이 없으니 알 방도가 없어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말은 뜬금없는 다른 기억에 갖다 붙었다.


2주 전인가 교회에서 카트린 할머니를 만난 일이다.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아들이 남편 친구라 종종 보는 사이.


"앤드류(남편 친구 아들)가 많이 나아졌다면서요? 지금 미시건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어! 소식 들었구나(글썽임 시작). 우리 손자가 한 달만에 그렇게 나아질 줄 누가 알았겠어(대화 시작 10초 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봄)..."


그녀의 손자를 향한 글썽임은 인간이 걸어볼 수 있는 온갖 만행이 압축된 얼굴 표정이었다. 그걸 보자 생전 처음으로 할머니가 되어보지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확 일더니 또 한편 누군가는 그 길을 걷고 있음에 이내 안도감이 몰려오면서 기쁨이 휘몰아쳤다. 그녀가 손자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존재하는 그 상태는 알 수 없는 전염력이 있었고 끊임없이 남의 안위를 걱정하는 존재들은 지혜로워 질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인생 신조가 '무리하지 말자'지만 가끔 제 정신이 아닐 때 무리를 하는데 오늘도 막 더 나은 존재가 되어보고자 시동을 거는 내 모습을 보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가 생각나서 한낮에 침대에 누워보았다.


800수 이집트산 면의 매끈까슬한 센세이션을 좋아하는 나는 이 섬유가 햇볕에 닿아 뜨끈하게 되면 이런 물성을 띈다는 것을 처음 배웠다. 친구 덕에 너무 좋은 맛을 알아 버렸다.




남편은 고양이를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
납작한 쑥떡이 열을 받아 빵빵해져서 한참 웃음


내가 글 말미에 이렇게 글과 아무 상관없는 사진을 붙이는 이유는 작가주의적 성향이 없기도 하거니와 글재주가 없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이렇게라도 채워보려는 몸부림임과 동시에 오늘 유심히 본 것들을 사랑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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