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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May 17. 2023

가만 누워봐




패들보드 위에선 정말 다양한 놀이가 가능한데 그중 압권은 물 위에 둥둥 가만히 누워있기야.


아찌가 타는 보드는 레이싱 보드(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스피드 내기 좋지만 방향 전환에는 불리)로 4미터 정도로 길어서 두 명까지 누울 수가 있어. 


이건 패들링 하다 지쳤을 때 자주 써먹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실 햇볕이 적당할 때 하는 게 가장 좋아. 


바다에서 했다간 자기도 모르게 한없이 조류를 타고 이동해 버릴 수가 있어서 해 본 적은 없고, 잔잔한 호수에서는 자주 했었지. 


아찌 동네에 그레고리호수(Gregory Lake)라고 있는데, 존경하는 스승이 계신 곳이라 자주 갔었어. 그 호수는 누워있기 정말 좋은 호수야. 


한참을 잔잔히 누워있다 보면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쿵' 하고 어디 호수 가장자리에 처박히는데 의외로 그 충격이 커서 매번 깜짝 놀라곤 해. 


물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항상 움직이고 있거든. 그 속도가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 체감하긴 어렵지만 어딘가 처박혀 보면 그 속도가 느껴져. 우리가 자전과 공전을 동시에 하는 빠른 공에 붙어살면서도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더라. 


물 위에 둥둥 떠서 해를 받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한없이 노곤해지면서 엄마 자궁 속에 있었을 때 이랬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어 지지. 


모든 걸 품어내는 물과 엄마는 참 많이 닮았어. 




그레고리 호수에 누워있는 아찌와 야금이네 강아지. YAGEUMEE ILLUSTRATION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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