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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취업하기 힘들다

돌고 돌아 또 취준

by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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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써니야. 너 졸업하면 뭐 할 거야?"
"몰라, 아직."
"생각해 둔 병원이라도 있어? 인터뷰는 보고 있고?"
"인터뷰는 무슨. 이력서만 50개 가까이 뿌렸는데, 인터뷰는 딱 하나 봤어."
"너 그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교수님한테라도 얘기해 봐. 어디 병원에 너 한 명 자리 내줄 수 있을지."



내과 레지던시가 어느새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인턴 때 심장내과(Cardiolog)를 꿈꾸던 나는 어느새 펠로우십은 뒷전이 되었고, 일단 입원전담전문의(hospitalist) 공고를 찾는 데에 온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펠로우십을 하지 않는 내과 레지던트들이 졸업 후 가장 많이 지원하는 직업이다. 하루에 16~20명의 입원 환자를 집중적으로 진료하며, 필요한 검사를 빠르고 쉽게 오더할 수 있고, 타과 전문가들도 쉽게 컨설팅할 수 있다 보니 막 졸업한 레지던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7-on-7-off 스케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즉, 7일 연속 근무한 후 7일을 온전히 쉴 수 있다. 몇몇 병원들은 야간 근무를 7-on-14-off로 운영하기도 하는데, 7일간 밤 근무를 하고 14일을 통째로 쉬는 파격적인 일정이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듯, 진입 장벽이 낮고 인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요즘은 병원 일을 마친 후에도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병원 도서관에서 구직 사이트만 뒤적이고 있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뉴욕을 중심으로 수많은 병원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돌아오는 건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는 형식적인 이메일뿐이었다. 그마저도 받지 못하면 불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이메일부터 네이버 이메일의 스팸 메일함까지 확인한다. 이미 지원한 공고도 괜히 다시 들락날락하고, "혹시 자리가 아직 남아 있냐"고 미련 가득한 문자를 리크루터(Recruiter)에게 보내기도 한다. 물론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아본 적은 없다.



비자가 필요한 내 상황 때문에 유독 취업이 어려운 줄 알았는데, 시민권자인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예 다른 주(State)로 이사 가는 친구도 있고, 끝까지 찾아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야간 근무를 선택하는 동기들도 많았다. 남편과 뉴욕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도 고민해 봤지만, 그가 무척이나 심장내과를 하고 싶어 했고, 현재 있는 뉴욕 병원에서 펠로우십 매칭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앞으로 최소 3~4년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






하루하루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어수선해 쉽게 잠들지도 못하고, 새벽에 간간이 깨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러다 졸업할 때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비자가 만료되어 미국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전문의가 부족한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아주 잠시 생각해 봤지만,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 남편에게 나를 따라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라고 권유하는 건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며칠간은 그나마 연락이 닿은 병원에서 비자 발급 유무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병원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유튜브를 틀어놓고 멍하니 여행 브이로그를 보며 현실을 도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1월부터 열심히 쌓아왔던 루틴들이 속속히 무너져 내려갔고 이 긴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보내는 내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다시 내 일상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고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여태껏 졸업을 앞둔 나는 일률의 과정을 무사히 끝마쳤다는 후련함보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생명과학 계열에서 학사만으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했고, 해외 의대를 졸업했을 때에는 내 비자를 지원해 줄 좋은 레지던시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리고 또 다시 레지던시 졸업이라는 큰 변환점을 앞둔 나는 이 익숙한 불안감이 반갑지는 않지만, 이 시기를 잘 버텨내면 새로운 시작점에서 또 다른 목표를 찾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원동력도 다시 얻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네이버 이메일과 병원 이메일을 20번쯤은 확인한 것 같지만, 괜찮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기분이 좋았고, 불안감에 잠식되었던 어수선한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다.

불안하더라도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계속 착실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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