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시를 마치고 첫 직장 면접을 보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How would your friends describe you?" (친구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 말할까요?)
다른 면접 질문에는 나름 괜찮게 질문을 한 것 같았지만 이 질문에는 말문이 턱 막혔다.
굉장히 뻔한 면접 질문인데도 그럴듯한 답변을 생각해내질 못했고, 긴 침묵 끝에 나는 대답했다.
"I think they'll say I'm helpful."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 할 거라 생각합니다)
밋밋한 대답에 면접관들의 표정이 다소 심드렁해 보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책임감이 강하다던지, 리더십이 뛰어난다던지, 완벽주의라던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뻔한 답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동기들보다 박식하지도 않았고, 일 효율도 나빠서 남들보다 3-4시간은 더 늦게 퇴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기들이 간간히 나를 찾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라인 (line) 이 필요할 때였다. 미국 내과 레지던트가 자주 넣는 라인에는 중심정맥관 (central line), 동맥관 (arterial line), 그리고 일반 IV 라인이 포함된다. 선배나 교수의 감독 하에 이 시술들을 각각 5번 완수하면 "Certified"라고 하는데 (IV 제외),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감독 없이 독단적으로 라인을 넣을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certified 되는 것이 졸업요건이 아니다 보니 중환자의학에 관심 없는 레지던트들은 굳이 certification을 받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다른 레지던트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2년 차 때에 선배와 동기들이 대부분 라인 넣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그 일을 대신해 왔고, 3년 차가 되어서는 후배들이 라인이 필요하다고 일반 병동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중환자실로 부르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까지 후배의 환자분의 IV를 넣어주기도 하고, 새벽에 삐삐를 동기에게 맡기고 그의 위급한 환자의 C-라인을 대신 넣어주기도 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냥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평범한 레지던트 (1)인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라인인 것만 같아서 시켜만 주면 열심히 했다. 숙련된 간호사 선생님들이 넣지 못하는 IV를 넣을 때면 속으로 뿌듯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여기저기서 라인을 넣고 다녔는지, 3년 차가 되었을 때에는 교수님들이 나를 "초음파 챔피언" (농담 같지만 정말 저렇게 불렸다) 들 중 한 명으로 임명하였고 초음파가 그려진 배지까지 수여해 주셨다.
위에서 언급한 면접은 싱겁게 끝났지만 몇 주가 지나고 나서 그 병원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페이는 다른 동기들에 비해 많이 적었지만 그만큼 자유 시간이 많이 주어지고 봐야 하는 환자 수가 적었기에 그것을 감안하면 합당한 페이라 생각했다.
같이 일하게 된 동료들 대부분은 아이비리그 대학 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졸업생들이었는데, 의대부터 레지던시까지 아이비리그를 나온 그들 사이에 있노라면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거기다 병원마다 수련 과정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는 본 적도 없는 다양한 시술들을 직접 해봤다는 동료들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부러웠다.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하나만을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내가 동료들에게 더 많이 의지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paracentesis (복수 천자) 할 줄 알아요?"
어느 주말 평소처럼 동료와 둘이서 서류작성을 하고 있는데, 처음 뵙는 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젊은 남성분이었는데, 수술복도 백의도 없이 말끔한 셔츠와 타이를 입은 모습을 보고 처음엔 레지던트로 착각했다. 그는 다른 병동의 입원 전담의였는데 자신의 환자가 지금 당장 복수 천자가 필요한데 부탁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고 했다. 그의 질문에 나는 동기를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드며 자신은 복수 천자를 딱 한 번밖에 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조심스레 certified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 네.. 필요한 도구들만 준비해 주시면 제가 가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라인을 넣어준 적은 많지만 복수 천자를 대신해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Interventional radiology (인터벤션 영상의학과/IR)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시술이기에 내과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급 시술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IR 이 주말에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었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복수 천자는 응급 시술로 분류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우리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을 길잡이 삼아 처음 보는 병동을 찾아갔다. 길을 알려주겠다고 따라 나온 간호사 선생님이 천자 때도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었는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물품들을 척척 찾아와 주시고 셋업도 도와주셔서 한결 편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
일반 병동 간호사들은 이렇게 병실에서 시술을 하는 것이 신기했는지, 다들 친구들까지 불러 모으며 나를 병실 밖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모습에 우리 간호사 선생님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크게 얘기하셨다.
"우리 선생님 어어어엄청 바쁘신데, 이거 하시겠다고 바쁘신 시간 쪼개서 오신 거야!"
"우리 선생님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셔!"
물론 후자는 열심히 부인했지만 그래도 나를 이렇게 믿어주고 치켜세워 주는 사람이 있어 든든했다. 천자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는데, 뒤돌아보니 그 젊은 입원 전담의 선생님이 계셨다.
"정말 고마워요."
아주 짤막한 인사였지만 그의 표정은 한츰 편안해 보였다.
그도 주말에 얼마나 난감했으면 층도 빌딩도 다른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왔을까.
나 역시 레지던트 시절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어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주말에 복수 천자가 필요해 인터벤션 영상의학과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그들에게 된통 혼나기도 했고, 밤중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어 외과 레지던트에게 C-line을 부탁했다가 그의 짜증섞인 설교만 듣고 결국 다른 중환자실 PA에게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 내 환자에게 필요한 시술을 스스로 못하는 것이 분통해서 중환자실에서 C-line을 몇 번이고 넣었고 내과에서는 잘 돌지 않는 인터벤션 영상의학과 로테이션을 두번이나 신청해 그들에게서 복수 천자를 직접 배웠다.
그 결과 나는 조금씩 인턴 시절 내가 그토록 필요로 했던 의사의 모습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비난거나 부끄럽게 만들지 않고,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 기꺼이 돕는 그런 사람. 여전히 배울 시술은 많고 내 환자들을 우선시해야 하기에 모든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면접에서 했던 답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