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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없이 밀레니엄을 맞은 엑스 세대의 록 앨범

《The Better Life》 3 Doors Down

by 김성대


얼터너티브 록 밴드 쓰리 도어스 다운3 Doors Down은 4인조였다. 드럼과 노래에 브래드 아놀드Brad Arnold, 리듬/리드 기타에 맷 로버츠Matt Roberts와 크리스 헨더슨Chris Henderson, 그리고 베이시스트 토드 해럴Todd Harrell까지. 여기서 크리스를 뺀 세 명은 미시시피 주 빌럭시Biloxi 외곽 마을인 에스카토파Escatawpa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다. 셋 다 형, 누나 덕분에 음악을 듣는 환경에서 컸는데 특히 브래드는 누나 네 명과 두 형이 있어 남들보다 더 많은 음악에 노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아, 물론 브래드가 필 콜린스Phil Collins나 돈 헨리Don Henley처럼 드럼 치면서 노래 부른 건 아니고 녹음 때만 쳤다는 얘기겠다. 브래드는 이후 보컬에만 전념한다.


최초 쓰리 도어스 다운은 1996년 토드가 이끌던 밴드가 와해된 뒤 맷과 브래드가 합류해 트리오로 시작했다. 라이브 데뷔는 친구가 연 파티에서 했는데, 당시 세트리스트엔 밴드의 오리지널 두 곡과 부시Bush, 메탈리카Metallica 커버 곡이 하나씩 포함됐다. 데뷔작 《The Better Life》에선 <Poison Down>의 헤비한 여운을 그대로 받아 질주하는 <By My Side>에서 메탈리카의 영향을 들을 수 있다. 브래드에 따르면 밴드는 그날 파티 내내 준비한 네 곡을 지하철 순환선처럼 돌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셋은 이 파티에서 스스로 가능성을 보고 앨라배마 등 남부 쪽으로 활동 반경을 넓힌다.


1997년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CD로 자체 제작해 라이브에서 판매하며 밴드는 본격 시동을 걸었다. 잘 나갈 땐 하룻밤에 2천 장을 팔기도 했다고. 사람의 귀는 거의가 비슷한지 메이저 레이블들이 거기서 훗날 히트 싱글이 될 <Kryptonite>에 관심을 보였다. 토드의 옛 밴드 동료 크리스가 이때 들어왔고, 이들은 뉴욕의 전설적인 클럽 CBGB에서 쇼케이스 라이브를 펼친다. 입질이 들어오던 메이저 레이블들 중 유니버설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Republic Records와 계약한 밴드는 시스터 헤이즐Sister Hazel의 플래티넘 앨범 《...Somewhere More Familiar》를 작업한 폴 에버솔드Paul Ebersold를 프로듀서로, 콘Korn과 앨리스 인 체인스, 세븐더스트, 메탈리카를 거친 토비 라이트Toby Wright를 믹싱 엔지니어로 각각 맞아 메이저 데뷔작 《The Better Life》를 만들었다.



쓰리 도어스 다운의 <Kryptonite> 틀어줘요!


반응은 금세 왔다. 빌럭시의 라디오 방송국 WCPR에 이들의 대표곡을 틀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스태프들은 처음엔 가족, 친구들의 요청이리라 여겼지만 신청 수는 예사롭지 않았다. 방송국 오퍼레이션 매니저였던 케니 베스트Kenny Vest도 “특정 곡에 이 정도 요청 쇄도 경험은 처음”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핵심은 이 열광이 빌럭시에서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환호의 농도는 세계에 걸쳐 나타났다. 한국에서 군 제대를 앞두고 있던 나도 또렷이 기억한다. 새천년을 맞아 이 곡을 MTV와 라디오에서 얼마나 자주 보고 들었는지를. <Kryptonite>는 결국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 1위까지 올랐다. 곡이 수록된 앨범 《The Better Life》는 빌보드 34위에 머물렀지만 발매 한 달 만에 골드를 기록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 《Awake》라는 앨범을 1년 새 미국에서만 2백만 장 넘게 팔아 낸 갓스맥Godsmack에 견줄 만한 성취였다.


첨단의 단초를 목격한 90년대를 겪고 아무런 준비 없이 밀레니엄을 맞은 엑스 세대 청년들. 그들의 허무주의와 중독, 자조와 극복, 그렇게 가까스로 도달한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뒤엉킨 《The Better Life》엔 느슨하면서도 강렬한 팝 후렴구가 생명인 <Kryptonite> 외에도 들을 만한 곡들이 꽤 있었다. 거기엔 뉴 메탈 그루브를 탑재한 <Duck and Run>을 지나 현악 편곡을 먹인 <Be Like That>,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타 리프를 가진 타이틀 트랙 <The Better Life>, 화려하진 않지만 하드록 풍 기타 솔로를 들려주는 <Down Poison>, 사실상 <Kryptonite>의 변주처럼 들리는 <Smack>이 앉아 있다.


《The Better Life》는 솔직히 대단한 명반은 아니고, 아직 얼터너티브 록의 열기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분위기를 잘 탄 케이스였다고 보는 게 맞다. 일본 음악평론가 야마구치 토모가 지적했듯 저들 음악은 스톤 템플 파일럿츠처럼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전형적이고 평균적인 록”이었다는 것이다. 당장 <Kryptonite>만 들어봐도 드라이브감 넘치는 하드록 리프에 컨트리풍 투 비트2 Beat, 교묘하게 더해진 어쿠스틱 맛에 싱어롱Sing-along 타입의 노래까지 온통 미국적이다. 토드 해럴은 그런 자신들 음악을 이렇게 자평했다. “얼터너티브 록도 헤비메탈도 아니다. 그냥 로큰롤이다.” 그러니 듣는 우리도 그냥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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