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 평전을 쓸 때도, 헤비메탈 가이드북을 쓸 때도 당신을 피해갈 순 없었습니다.
당신은 메탈을 대변하는 메탈 밴드를 대변했고, 메탈 역사에서 메탈 그 자체로 눈부셨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랜디, 제이크, 잭을 데려와 준 일은 로또 당첨 같은 일이었죠.
사실 너바나 이야기를 끝내면 블랙 사바스와 당신 이야기를 풀어볼 요량으로 당신의 자서전을 읽던 참이었습니다.
거길 보니 당신의 생애 첫 무대는 가족들 앞에서 클리프 리처드의 Living Doll을 부른 것이더군요. 애스턴에 있는 프린스 앨버트 초등학교 입학식엔 발길질과 생떼를 써 목덜미를 잡혀 끌려 들어가야 했고요.
같은 학교를 다닌 토니 아이오미가 몽골 백파이프만 줘도 몇 시간 만에 블루스 리프를 뽑아냈던 것과 달리, 당신의 집중력은 5초 밖에 되질 않아 기타를 배울 수 없었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같은 5초 만에 파인트 한 잔을 비우게 된 게 열여덟 살 때였다는 사실, 20대가 되어서야 바다를 처음 봤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것, 30대 때 난독증과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를 앓고 있는 걸 알게 된 일.
무엇보다 ‘Ozzy’란 이름은 누가, 언제, 왜 생각해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당신은 자서전에 썼죠. 그냥 어린 시절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을 뿐인데 당신은 평생 본명인 ‘존’보다 ‘오지’에 더 익숙한 삶을 살게 됩니다. 스스로는 광대 같은 본인 성격과 잘 어울렸던 것 같았다죠.
약속하겠습니다. 블랙 사바스와 당신의 이야기를 반드시 한국어로 옮기리라고. 제 진짜 추모는 그때 대신 하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RIP Ozzy Osbourne (1948. 12. 3 – 2025. 7. 22)
오지를 오지일 수 있게 해준 샤론 오스본에게도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