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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21. 2016

Megadeth Biography

메탈리카의 대척점에 선 단 하나의 밴드

모든 것은 힘있는 스타카토 기타 리프와 바람 같은 트레몰로 피킹을 즐기는 기타리스트이자 냉혹하고 “피에 굶주린(<롤링스톤>의 표현이다)” 목소리를 가진 보컬리스트 데이브 머스테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어릴 적 들었던 캣 스티븐스나 엘튼 존 같은 아버지의 팝 취향보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Sad Wings of Destiny]를 좋아하는 야구부 코치의 헤비메탈 취향에 더 공감하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이어 어린 머스테인의 정서를 강타한 몇몇 앨범들, 예컨대 모터헤드의 [Overkill]과 아이언 메이든의 [Killers]는 그가 프로 헤비메탈 뮤지션으로서 걸어갈 것을 종용했고 머스테인은 드라마틱 멜로디와 스피드 즉, “NWOBHM의 연주 기교에 하드코어 펑크의 공격성과 속도감”을 녹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메탈리카라는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덴마크 출신 드러머 라스 울리히는 밴드 결성을 위해 “타이거스 오브 팬 탱(Tygers of Pan Tang)과 다이아몬드 헤드, 그리고 아이언 메이든으로 잼을 할 사람”을 구했던 터였고 데이브 머스테인은 그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지원해 발탁되었던 것이다. 1981년의 일이다.


“Thrash is my business…” 전설의 시작 (1985~1990)


하지만 머스테인과 메탈리카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약물과 알코올 문제로 그는 메탈리카의 데뷔 앨범 [Kill’em All] 발매 직전 라스 울리히와 제임스 헷필드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2개월 뒤 같은 건물 아래층에서 밴 헤일런을 연주하고 있던 베이시스트 데이빗 엘렙슨을 만나 ‘힘의 소멸’을 뜻하는 메가데스(megadeth)를 결성하게 된다. 물론 이 이름은 “핵폭발로 인한 100만 명의 사상자”라는 뜻을 가진 ‘megadeath’에서 ‘a’를 고의로 지운 것이다. 끝내 쓰이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메가데스의 음악 스타일과 매우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리듬에 리드 기타, 리드 보컬, 메인 송라이팅까지를 책임지는 데이브 머스테인과 그를 보좌하는 데이빗 엘렙슨은 한때 드러머 15명을 오디션 보고(최종 합격은 리 로쉬(Lee Rausch)라는 인물에게 돌아갔다) 슬레이어의 케리 킹까지 리듬 기타리스트로 불러들여 불안한 라인업을 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밴드의 진정한 윤곽은 재즈 기타리스트 크리스 폴랜드와 재즈 프레이즈를 스래쉬 메탈 리듬 라인에 이식한 가 사무엘슨(드럼)이 나타나며 비로소 잡히게 되었고, 머스테인은 이 라인업을 바탕으로 자신의 밴드에 본격 시동을 건다.

그렇게 인디 레이블 콤배트(Combat Records)와 계약 후 내놓은 첫 번째 메가데스 앨범이 바로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이다. 이후 메가데스의 상징이 될 빅 레틀헤드(Vic Rattlehead)가 실사로 재킷 전면을 장식한 이 앨범엔 메탈리카 시절 머스테인이 쓴‘Mechanix’ 외에도 ‘The skull beneath the skin’과 ‘Looking down the cross’ 같은 양질의 트랙들이 있었지만 그걸 받쳐주지 못한 조악한 레코딩 수준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스래쉬 메탈의 태동에 결정적 공헌을 해낸 이 앨범에는 낸시 시내트라의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을 커버한 ‘These boots’도 수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의외의 커버 트랙은 다음 앨범에 실릴 ‘I ain't superstitious’까지 이어진다. 이 곡은 시카고 블루스의 두 거장 윌리 딕슨과 하울링 울프가 각각 쓰고 녹음한 것으로 제프 벡도 자신의 데뷔 앨범 [Truth]에서 커버한 바 있다.

1986년, 메가데스는 데뷔 앨범과 같은 멤버로 익스트림 메탈의 노른자로 인정받은 두 번째 앨범 [Peace Sells… But Who’s Buying?]을 발매하였다. 같은 해 발매된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슬레이어의 [Reign in Blood]와 함께 ‘스래쉬 메탈의 부흥’을 이끈 작품으로 평가된 이 앨범은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콤배트 레코드에서 25,000달러를 들여 제작한 것으로, 엘렙슨의 베이스 리프를 앞세워 댄서블 하기까지 한 타이틀 트랙을 크게 히트시키며 밴드의 성공을 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크리스 폴랜드와 데이브 머스테인의 초절정 기브 앤 테이크 솔로는 조야했던 밴드 로고와 캐릭터(빅 래틀헤드)가 쌈박하게 탈바꿈한 재킷 이미지에 걸맞게 더욱 화려해졌고, 스티브 해리스 만큼이나 크게 들리는 엘렙슨의 베이스는 현란한 가 사무엘슨의 드러밍과 톱니처럼 맞물리며 트윈 기타의 맞은 편에서 양날의 검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부터 메가데스의 ‘멤버 변동 수난’이 시작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치 메탈리카를 떠날 때 머스테인처럼, 크리스 폴랜드와 가 사무엘슨이 마약과 술에 찌들어 더 이상 밴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둘은 87년에 해고되었다.

밴드는 다시 오디션에 들어갔다. 처음엔 머스테인이 칭찬한 생크추어리(Sanctuary)의 기타리스트 제프 루미스가 영입될 뻔 했으나 16세라는, 심하게 어린 나이가 그의 발목을 잡았고 다시 스피드메탈 밴드 맬리스(Malice) 출신 제이 레이놀드(Jay Reynolds)가 그 자릴 꿰찰 듯 하더니 결국 메가데스의 새 기타리스트 자리엔 레이놀드의 스승인 제프 영(Jeff Young)이 들어오게 된다. 청출어람이라는 진리가 반쪽 진리라는 것을 증명한 이 ‘대체인사’는 곧바로 세 번째 앨범 [So Far, So Good... So What!]으로 이어졌고, 사무엘슨의 자리에는 제프 영과 똑같이 메가데스 디스코그래피 중 단 한 장에만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는 척 벨러(Chuck Behler)가 앉는다.

다이하드 팬들에게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전 “메가데스의 마지막 걸작”으로 여겨지곤 하는 이들의 3집에는 버스 전복 사고로 생을 마감한 메탈리카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의 죽음에 영감을 받은 머스테인이 앉은 자리에서 썼다는 ‘In my darkest hour’와 스티브 존스(Steve Jones)가 직접 기타 솔로를 연주해준 섹스 피스톨즈의 고전 ‘Anarchy in the U.K’를 중심으로 정치적인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며 ‘지적인 스래쉬 메탈(Intellectual Thrash Metal)’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폴 라니와 데이브 머스테인이 공동 프로듀싱한 사운드는 비록 서글펐지만 그 조악함마저 장점으로 승화되는 지명도가 밴드에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했다.  


“Countdown to Success” 정상에 서다 (1990~1994)


제프 영과 척 벨러가 나가고 메가데스는 또 한 번 멤버 교체라는 산고를 겪어야 했다. 판테라의 다임백 대럴을 포함한 날고 기는 기타리스트들이 메가데스의 문을 두드렸고, 마지막 참가자를 통해 접한 [Dragons’s Kiss] 음원을 들은 머스테인은 결국 캐코포니 출신 속주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만을 메가데스 멤버로 받아들였다. 드럼에는 닉 멘자가 앉았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 돈 멘자(Don Menza)의 영향으로 2살 때부터 드럼을 치기 시작한 그는 아버지 덕분에 잭 디 조넷의 세트에서도 연주를 해보았다고 한다. 버디 리치와 스티브 갯, 그리고 제프 포카로를 좋아하는 닉의 드러밍은 방탕한 생활만 아니었으면 계속 밴드에 남았을 가 사무엘슨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23위, 영국 차트 8위로 데뷔. 노골적인 정치 성향을 드러내며 세간이 해대는 메탈리카와 비교에 선을 그은 2집과 핵참사를 묘사한 ‘Set the world afire’가 실린 3집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로 한 머스테인은 네 번째 앨범 [Rust in Peace]의 주제를 정치,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분야인 전쟁으로 잡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 '전쟁 포로', 그리고 미국의 절대 우방국 '이스라엘' 등을 구체적인 메뉴로 골랐다. 구성과 연주의 완벽함, 그리고 밝지 않은 정치/사회를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메탈리카의 […And Justice for All]과 비교된 이 작품은 헤비메탈계 최고의 기타 리프가 들어있는 ‘Holy wars... The punishment due’와 두 기타리스트의 인터플레이가 불을 뿜는 ‘Hangar 18’, 그리고 마티 프리드만의 기타 솔로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던 ‘Tornado of souls’라는 3연타를 앞세워 메가데스 멤버들에게 벼락 같은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다. 머스테인과 멤버들은 당시 그야말로 밀린 빚을 갚고 밀려오는 빛을 만끽했다.

건스 앤 로지스의 데뷔작을 주물렀던 마이크 클링크가 [Rust in Peace]의 프로듀서로 가세하며 칙칙했던 메가데스 사운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리고 2년 뒤, 이들의 사운드는 또 한 번 진화한다. 바로 4집과 더불어 이들 최고작으로 회자되고 있는 [Countdown to Extinction]에서다. 전작에서 믹싱을 담당한 막스 노만이 강박을 넘어 결벽에 가까운 사운드 디자인을 감행한 본작은 차트 성적에서 빌보드 2위까지 치달아 메가데스를 세계에 알렸고, 판매고도 더블 플레티넘을 훌쩍 넘기며 이들의 전성기를 재확인해주었다. 타미 앨드릿지의‘Over the mountain’ 인트로 드러밍을 닮은 ‘Skin O’ my teeth’, 머스테인이 리허설 스튜디오 뒷마당에 있던 농구장에서 영감 받아 쓴 ‘Symphony of destruction’ 과 ‘Sweating bullets’가 앨범의 대표 트랙들로 자리매김하며 메가데스를 음반과 공연장 외 라디오와 TV에서도 듣고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 음악에 조금씩 대중성이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Risk”를 안고 대중의 품으로 (1994~2001)


당시엔 말랑해졌다고 핀잔깨나 들었지만 따지고 보면 [Youthanasia]는 적어도 메탈리카의 [Load]보다는 강력했다. 닉 멘자의 웅장한 필인이 곡을 이끄는 ‘Reckoning day’와 판테라의 ‘Cowboys from hell’에 영감받아 쓴 ‘Train of consequences’의 초반 원투 펀치만 해도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골수팬들이 이 앨범에 실망한 이유는 아마도 ‘속도의 실종’에 있었을 것 같은데 ‘Addicted to chaos’나 ‘Blood of heroes’, 그리고 ‘I thought I knew it all’ 같은 곡에서 과거 메가데스의 살인적인 속도감은 깡그리 증발했기 때문이다. ‘Elysian fields’나‘Victory’ 같은 곡이 그나마 비트감을 머금고 있었지만 과거의 메가데스에 비하면 그것은 고속도로와 국도 간 속도 차와 진배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한 인간의 모순된 사유를 음악으로 옮긴 ‘A tout le monde’(머스테인은 이 곡이 자살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이나 팝이라 해도 무방할 ’Family tree’ 같은 곡에 기존 팬들의 마음이 움직일리 없었다. 기타 솔로도 이전만 못해 활화산 같은 메가데스의 80년대 스타일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겐 마냥 심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은 전작과 더불어 대중에게 분명히 어필했고(빌보드 앨범 차트 4위) 한 노파가 젖도 떼기 전 아기들(메가데스의 음악을 듣는 젊은 팬들)을 빨랫줄에 끝도 없이 메다는 재킷으로 메가데스는 음악 외 이미지로도 대중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을 수 있었다. 막스 노먼 덕분에 더욱 풍성해진 사운드, 코러스와 브릿지 멜로디 라인은 메가데스 역사상 이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머스테인이 다시 약물 치료를 끝낸 뒤 나온 작품인 만큼, [Youthanasia]는 마냥 욕만 먹다 ‘안락사(euthanasia)’ 당할 그런 만만한 평작은 아니었다.

3년 뒤 데이브 머스테인, 마티 프리드만, 데이빗 엘렙슨, 닉 멘자라는 황금 라인업이 남긴 마지막 앨범 [Cryptic Writings]가 발매된다. ‘메가데스판 ‘Enter Sandman’으로 불렸던 히트 싱글 ‘Trust’와 머스테인, 프리드만의 트윈 솔로가 아름다웠던 ‘She-wolf’가 수록된 이 앨범 역시‘과거의 메가데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The Disintegrators’나 ‘Vortex’, ‘FFF’ 같은 제법 하드한 트랙들도 사이사이 배치돼 있었건만 아무래도 메가데스의 대중성이 싫었던 팬들의 귀엔 ‘Almost honest’나 ‘I’ll get even’ 같은 곡들이 더 크게 들렸던 것 같다.어쨌든 이 앨범을 끝으로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았던 닉 멘자가 밴드를 떠났고 그 자리엔 수어사이덜 텐던시스 출신의 테크니션 지미 드그라소가 앉았다. 지난 7년간 안정적이었던 라인업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티 프리드만이 머스테인의 팝 감각 발휘를 부추긴 [Risk]는 그야말로 음악적 ‘리스크’를 떠 안은, 헤비메탈 밴드 메가데스에겐 이례적인 시도였다. 명성이 있어 차트 16위로 데뷔는 했지만 그러나 너무 멀리 간 것임엔 틀림없었다. 믹 로저스 감독의 <유니버설 솔저 2 : 그 두 번째 임무>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Crush ’em’과 마지막 기타 솔로가 좋아 글쓴이가 따로 아꼈던 ‘Breadline’ 정도를 빼면 이 앨범은 메가데스의 흑역사 중 하이라이트가 될 확률이 높다. 도무지 ‘Ecstasy’ 같은 곡은 지금 들어도 전혀, 절대 메가데스 답지 않은 ‘팝’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메탈리카의 [Load]와 비교 대상은 사실 [Risk]였다.


“Megadeth needs a change” 과거를 향해 (2001~2009)


[Risk]에 대한 반성 차원이었을까? 머스테인은 [Youthanasia]와 [Countdown to Extinction]을 버무린 듯한 [The World Needs a Hero]를 마티 프리드만마저 밴드를 떠난 1년 뒤 세상에 내놓았다. 전작부터 밴드의 풀타임 멤버로 활약한 지미 드그라소가 자신의 리듬감을 찾은 가운데 마티의 자리엔 사바티지 출신 기타리스트 알 피트렐리가 들어왔다. [Rust in Peace] 이후 처음으로 메인 재킷에 등장한 빅 래틀헤드가 에일리언처럼 머스테인의 배를 찢고 나오는 모습을 앞세운 본작은 곡들이 대체로 느리지만 멜로디를 강조한 [Youthanasia]에 비해 헤비니스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했다. 피트렐리는 스트링 어레인지를 먹인 ‘Promises’에서 머스테인과 송라이팅 파트너 겸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며 신고식을 치렀고, 이 앨범을 끝으로 잠시 메가데스를 떠나게 되는 원년 멤버 데이빗 엘렙슨(그는 밴드 내 ‘배당금’을 둘러싸고 머스테인과 소송까지 벌이기도 했다)은 쇳내음 가득한 베이스 지문을 끈질기게 메가데스의 음악에 찍어 남겼다. ‘Tornado of souls’를 생각나게 하는 ‘Dread and the fugitive mind’의 기타 솔로와 ‘Return to hangar’라는 수록곡이 암시했듯 머스테인은 이 앨범을 [Risk]로 흔들렸던 밴드 색깔과 매너리즘 직전에 선 자신의 정체성을 다잡는 계기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혹자는 이마저도 메가데스의 ‘퇴행’으로 치부해버렸으니 영광의 재현이라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앨범 발매 때마다 라인업을 살피게 만드는 메가데스의 열 번째 앨범 [The System has Failed]에선 아니나 다를까 지미 드그라소와 알 피트렐리의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재즈 팬들에게 더 익숙할 비니 콜라유타라는 이름이 있었고 엘렙슨의 자리에는 지미 리 슬로아스(Jimmie Lee Sloas)라는 조금은 생소한 세션 베이시스트가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2집 이후 메가데스에서 자취를 감췄던 크리스 폴랜드가 다시 머스테인과 생사를 건 인터플레이 한 판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셀린 디온과 페이스 힐 같은 팝, 컨트리 뮤지션의 앨범들을 다룬 제프 볼딩이 프로듀서로 가세한 이 앨범은 내용 면에서도 나쁘지 않아, 예컨대 ‘Blackmail the universe’를 들으며 [Peace sells…] 앨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식이었다. 비니 콜라유타라는 괴물 드러머가 연출해낸 속도와 박력, 머스테인이 주도한 날선 기타 리프와 솔로, 그리고 차가운 정치 메시지까지. 팬들이 메가데스라는 밴드에 바라는 많은 요소들이 거기엔 있었다. 결국 이 앨범은 다음 작품 [United Abominations]와 더불어 메가데스의 중기를 부끄럽지 않게 할 한 장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제목과는 달리 메가데스의 ‘시스템’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The System has Failed]를 내고 자신감을 되찾은 머스테인은 [Youthanasia] 이후 가장 높은 빌보드 차트 순위(8위)를 기록한 [United Abominations]로 완벽에 가까운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강하고 빠른 첫 곡‘Sleepwalker’부터 듣는 이를 단숨에 압도하는 이 앨범은 캐나다 파워 메탈 밴드 에이돌론(Eidolon)에서 활약한 드로버 형제(글렌 드로버, 숀 드로버)가 각각 기타와 드럼을 차지하며 2016년작 [Dystopia]가 나오기 전 가장 화끈한 메가데스 음악을 들려주었다. AC/DC의 ‘What's next to the moon’을 참고한 듯한 ‘Blessed are the dead’, 이탈리아 고딕 메탈 밴드 라쿠나 코일의 보컬 크리스티나 스카비아가 피처링한 ‘A tout le monde’의 리메이크 ‘À tout le monde (Set Me Free)’, 그리고 일본 팬들에게 바친 레드 제플린의 ‘Out on the tiles’ 커버 등이 수록된 [United Abominations]는 기타 월드(Guitar World)지 선정 ‘2007년 최고의 헤비메탈 앨범’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 가열찬 기운은 다음 앨범 [Endgame]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And game” 성공한 앨범과 실패한 싱글 (2009~2016)


전작의 성공에 고무된 머스테인은 “미친 솔로잉”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연주곡 ‘Dialectic chaos’로 테크니컬 스래쉬(Technical Thrash)의 부활을 알린 열 두 번째 앨범 [Endgame]을 발표했다. 헤비메탈 명가 로드러너에서 처음으로 발매한 본작은 3집 스타일을 녹인 ‘This day we fight!’(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에서 영감을 얻은 곡)부터 심상치 않더니 각각 4집과 5집을 연상시킨 ‘1,320’’과 ‘Bodies’가 있는 중반까지도 그럴 듯한 수준을 유지했다. 개인 사정으로 형제(숀 드로버)를 남기고 밴드를 떠간 글렌 드로버 대신으론 파워 메탈 밴드 잭 팬저(Jag Panzer)에서 키보드와 기타를 담당한 크리스 브로데릭이 들어와 머스테인 곁에 섰고, 지난 앨범부터 메가데스와 함께 한 화이트 라이온 출신 베이시스트 제임스 로멘조는 이 앨범을 끝으로 끝내 메가데스를 떠나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관례가 되어버린 멤버 바꿈 현상.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숀 드로버와 머스테인이 함께 작곡한 첫 싱글 ‘Head crusher’는 97년 ‘Trust’ 이후 처음으로 그래미어워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데뷔작부터 [Rust in Peace]까지 우리가 사랑했던 메가데스 음악의 긴장감을 2010년대를 1년 앞둔 시점에서 들었던 그 때. 결국 게임은 끝(end)이 아닌 지속(and)되기 위한 게임이었던 셈이다.

메가데스가 착실하게 제2의 전성기를 일구던 중 데이빗 엘렙슨이 밴드로 돌아온다. 그리고 발매한 로드러너 2탄 [Thirteen(TH1RT3EN)]. 머스테인의 생일(9월13일)과 머스테인이 처음 기타를 잡은 나이(13세)에 13집과 13곡 수록이라는 앨범의 자체 팩트까지, 온통 ‘13’으로 도배해버린 이 앨범은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미국의 갱스터 알 카포네를 지목한 ‘Public enemy No. 1’을 첫 싱글로 택하고 과거 마티 프리드만과 함께 쓴 곡들의 재녹음 버전도 고루 실었다. 닉 멘자가 작사에 참여한 ‘New world order’와 제목만큼 처참한 헤비니스 트랙‘Millennium of the blind”가 그 증거이며, 당초 [United Abominations] 스페셜 에디션 반의 보너스트랙으로 써두었던 ‘Black swan’도 비슷한 사연을 가진 곡이다. 전작들에 비길 순 없지만 그것들 앞에서 부끄러워 할 수준도 아닌 완성도가 [Thirteen]엔 있었다. 무작정 ‘독불장군’이라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머스테인이 정말 잘 버틴 것이다.

열 네 번째 작품 [Super Collider]는 [Cryptic Writings] 이후 처음으로 전작과 ‘같은 라인업’으로 낸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머스테인은 확실히 지쳐보였다. 사실 [The World Needs a Hero]부터 [Thirteen]까지, 메가데스는 분명 싱글보다는 앨범으로 승부하는 근성을 보였다. 이 말은 곧 사람들 뇌리에 남을 만한 대표 싱글들이 과거에 비해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 평단도 팬들도 과거처럼 ‘빠르고 어둡고 헤비’하기만 한 메가데스의 중후기 음반들 앞에서 실종된 ‘멜로딕’ 히트 싱글들의 가치를 망각한 것은 아닐까. 앨범이 좋았던 건 알겠는데 딱히 기억나는 싱글은 없는 것이다. 이 상황이 가장 심각하게 무르익은 지점이 바로 [Super Collider]였다. 씬 리지의 ‘Cold sweat’ 커버 트랙보다 매력적인 싱글이 과연 이 앨범에 있었는가. 첼로 연주를 담은 ‘Dance in the rain’에서 디스터브드의 데이빗 드레이맨이 등장해도, 피들(fiddle)을 섞은 ‘The blackest crow’의 이국 정서에도 큰 감흥이 없었기는 마찬가지. 머스테인, 그리고 메가데스에게는 뭔가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해보였다. ‘Kingmaker’ 같은 곡으로 5집 근처를 배회해도 작법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는 ‘좋은 앨범’이라는 추상의 칭찬이 ‘멋진 싱글’이라는 구체적인 주목으로 이어질 수 없다. 그렇게 다시 3년이 흘렀다.


“Dystopia” 되살아난 전설 (2016~)

머스테인이 매너리즘에 빠진 게 맞았던 것 같다. 새 앨범 [Dystopia]는 작곡, 편곡, 연주, 구성까지 모든 면에서 호쾌하다. 이 앨범에 과감하게 만점을 던진 <가디언>지의 지적대로 어쩌면 해답은 “[Endgame]과 [Rust in Peace]의 조합”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오래 버틴 숀 드로버와 크리스 브로데릭도 나가고 여기엔 다시 브라질 심포닉 메탈 밴드 앙그라의 키코 루레이로(Kiko Loureiro, 기타/피아노)와 인기 그루브 메탈 밴드 램 오브 갓의 크리스 애들러(드럼)가 새로 가세했다.(본래는 마티 프리드만과 닉 멘자가 돌아온 전성기 라인업을 노렸으나 끝내 성사되진 못했다고 한다.) 에디 밴 헤일런과 지미 헨드릭스, 랜디 로즈와 지미 페이지를 계승한 키코의 플레이는 이전 기타리스트들에 비해 결코 덜 화려하지 않으며, ‘Post american world’ 같은 곡에서 들을 수 있는 크리스 애들러의 더블 베이스 드러밍과 매 곡마다에서 번뜩이는 리듬 프레이즈는 닉 멘자와 지미 드그라소의 장점만 흡수한 듯 메가데스 음악에 깊숙이, 그리고 긍정적으로 스몄다.

LA 하드코어 펑크 밴드 피어(Fear)의 ‘Foreign policy’를 커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데이브 머스테인은 이번 신보에서 ‘스피드와 멜로디, 그리고 헤비니스’라는 메가데스의 3대 가치를 균형있게 배치하겠다는 의지로 가득차보였다. 평소 조지 오웰 같은 영미권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소재를 찾아온 머스테인답게 미국(또는 세계)의 우울한 미래를 점친 타이틀 트랙 ‘Dystopia’의 메인 기타 리프와 후반부 템포 체인지 뒤 기타 솔로가 터져나오는 모습이 ‘Hangar 18’을 떠올리게 하는 건 때문에 우연이 아니다. 머스테인은 [Risk] 이후 항상 1992년까지 과거와 언제나 바뀌는 ‘현재’를 조화시키려 했고 [Super Collider]에서 한 차례 무릎을 꿇을 뻔 하다 이번에 그나마 성과를 거둔 것이다. 키코와 크리스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이 앨범이 좀 더 빛을 발했으려면 마티와 닉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오랜 팬으로서 욕심은 좀처럼 가실 줄을 모른다. 물론 이 이기적인 한줌의 불만이 [Dystopia]의 거대한 완성도에 찬물을 끼얹을 순 당연히 없다. 앙그라도 램 오브 갓도 데이브 머스테인의 품 안에 오면 그대로 재킷의 사무라이 장검 같은 메가데스의 서슬퍼런 음악 세계로 지체없이 편입되기 때문이다. 숙적 메탈리카를 살짝 긴장시킬 만한 멋진 작품. 메가데스와 머스테인은 건재하다.


* 이 글은 음악매거진 <파라노이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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