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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09. 2016

Manixive - Pandora

한국의 아치 에너미 

한국의 아치 에너미. 일단 이렇게 부르면서 매닉시브라는 밴드를 소개하고 싶다. 부산 출신으로, 그 잔인하다는 메탈코어와 멜로딕 데스메탈에 여성 보컬을 이식한 실력파 록밴드이다. 2014년, “음반은 일종의 발자취”라는 밴드의 리더 박준용(베이스)의 철학에 맞게 풀렝쓰 앨범 ‘Not a puppet’으로 데뷔했고, 얼마전 두 번째 결과물이자 미니앨범인 ‘Pandora’를 발매했다. ‘2015 부산 음악창작소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완성된 이 앨범은 그러나 보컬 오나은이 밴드를 나가면서 살짝 빛이 바랜 감이 없지 않은데, “이젠 인정해주고 응원해주시는 아빠엄마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감사글(thanks to) 잉크가 마르기 무섭게 밴드의 얼굴이었던 그가 돌연 팀을 등지게 된 것이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건 사실 밴드에겐 치명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척박한 한국 땅에서 오나은 같은 순혈 그로울러를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가 탈퇴한 뒤 밴드가 ‘잠정 휴지기’에 접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작 ‘Pandora’에는 총 다섯 곡이 실려있다. 뮤직비디오까지 따로 제작한 ‘catharsis’의 극강 헤비니스, 메가데스 풍 기타 멜로디 라인이 좋은 ‘sad training’, 임경현이라는 드러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simulacrum’과 ‘gypsophila’. 곡 구성과 연주, 사운드까지 내용물이 훌륭해 오나은의 탈퇴는 더 안타까움을 준다.


하지만 “라임이 어그러지는” 한국어 대신 만국 공용어인 영어로 가사를 쓴 덕에 밴드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의 30~40%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를 또렷이 가리키는 느낌이다. 이 정도 아이디어와 드라이브감이라면 분명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할 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록 음악을 '시끄럽고 저급한 장르'로 인식하는 곳에서 매닉시브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계속 음악을, 그것도 진지하게 해나갈 생각이라면 해외를 염두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첫 곡 ‘poison’의 인트로를 들으며 나는 여타 유명 메탈코어 밴드들과 큰 차이 없는 매닉시브의 강력한 가능성을 데뷔 앨범에 이어 다시 보았다.

좋은 앨범을 내놓고도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지만, 매닉시브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실체 없는 ‘한류’를 넘어, 음악이라는 실체로 세계라는 또 다른 실체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 그 일을 위해 매닉시브가 꼭 두 번째 풀렝쓰 앨범을, 하루빨리 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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