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ID ; Peace B'

by 김성대


2008년부터 3년 여간 도쿄에 머문 적이 있다.

음반의 천국인 그곳, 정확히는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위저Weezer 앨범 두 장을 샀다.

한 장은 '레드 앨범'이라 부르는, 당시로선 밴드의 세 번째 셀프 타이틀 앨범이었던 《Weezer》, 또 한 장은 2010년작 《Hurley》였다.

흥미로웠던 건 레드 앨범 일본반 보너스 트랙이 보아의 <Meri Kuri>였다는 것. '메리 쿠리'란 줄임말을 마구로참치 만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로 통하는 말이다. 저들이 굳이 보아의 곡을 택한 건 위저의 리더 리버스 쿼모Rivers Cuomo의 일본인 아내가 보아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바치는 보너스 트랙. 리버스는 사랑꾼이었다.



그랬다. 2000년에 한국에서, 이듬해 일본에서한국 나이 14살, 일본에선 13살이었다 각각 공식 데뷔한 보아는 2008년 당시 이미 두 나라의 슈퍼스타였다. 성탄절이 지척인 오늘, 이 앨범 《ID ; Peace B》를 꺼낸 건 문득 17년 전 그때가 떠올라서다.


보아는 '글로벌' 케이팝의 원조였다.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200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싸이의 <강남스타일>, BTS 데뷔보다 무려 10여 년 앞서 벌어진 일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성취의 배경엔 이수만이라는 사람이 있다. 보아는 데뷔작 인사말 첫 줄에 이렇게 썼다.


먼저 3년 동안 저의 재능을 깨워주시고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이끌어 주셨던 이수만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알다시피 보아는 아는 오빠를 따라 백화점 댄스 경연대회를 구경 갔다가 되레 자신이 현장에서 캐스팅 된 90년대 중후반부터 3년간 춤, 노래, 외국어 등 트레이닝을 거쳐 새천년에 데뷔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음악을 좋아한 오빠들 영향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뉴 키즈 온 더 블록 같은 팝 그룹부터 머라이어 캐리데뷔작의 <No Way> 인트로 스캣에서 머라이어의 <Dreamlover>가 들린다, 휘트니 휴스턴, 디벨라 모건Debelah Morgan, 데스티니스 차일드까지 섭렵했다.

자신이 활약할 곳의 굵직한 팝 아이콘들, 이를테면 아무로 나미에, 미샤, 우타다 히카루, 하마사키 아유미는 1999년 여름방학 때 일본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접했던 걸로 알고 있다.


이 앨범은 보아가 10대 중반까지 흡수한 국내외 댄스, 알앤비 유전자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브리트니 스피어스까지 곁들인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비트나 멜로디 라인을 포함한 곡들의 구조, 작법이 지금 케이팝 음악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심심하지만 그 무게감만은 독보적인데, 그건 역시 이 앨범 또는 보아가 케이팝 역사에 매긴 위상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최초'였으니까.


속지를 열어보면, 지금은 해외 인력들로 잠식되다시피 한 스태프 명단이 한국인들로 채워져있는 것에서 격세지감이 든다. 중에서도 SM 역사의 산 증인인 유영진과 케이팝 역사에 획을 그은 방시혁Hit Man Bang의 이름은 특히 눈에 띈다. 가사도 거의가 한글이어서 점점 영어로 채워지고 있는 지금의 케이팝 노랫말과는 이질감마저 든다. 작사/작곡가가 온통 한국 사람들이어서일까. 정서 상 '가요' 냄새가 풍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2000년대에 10대, 20대를 보낸 사람들에겐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킬 음악이다.


보아는 과거 한 일본 매체의 "<ID ; Peace B>로 일본 리스너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짧은 시간 안에 실현되긴 어렵겠지만, 인터넷에 들어가면 세계 어디라도 간단하게 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세계는 하나야'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가까워'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개인의 비전이었던 보아의 바람은 더 많은 국경을 허문 뒤 케이팝의 현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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