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푸른하늘 ‘어제의 소설’
당한 것인지 가한 것인지는 모르나 이 앨범의 주인공은 지금 실연을 겪었다. ‘읽히지 않는 책’, ‘애정 없는 장난’, ‘902동 302호’, ‘나는 니가 필요해’. 모두 떠난(또는 떠나보낸)사람과 남은 사람의 이야기다. 소소한 듯 또박또박 읊어가는 사연들, 실연당한 이의 식음 전폐를 닮은 첼로의 더부룩한 관여, 한바탕 실컷 울고 난 목소리 같은 곽푸른하늘의 쓸쓸한 음색, 스틸과 나일론을 오가는 기타 줄의 섬세한 떨림. 이 앨범은 가사에 집중해야 한다. 아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절로 집중하게 될 가사들이다. 어쩌면 가사가 음악을 쓱쓱 지워나가는 이상한 상황을 당신은 목격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앨범 제목에 괜히 ‘소설’이 들어간 게 아닌 듯싶다. 나는 네가 쉬지 않는 공휴일. 나를 베어 찢겨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헤어진 자의 독한 다짐은 “내가 나를 잃다니!”라고 쓴 어떤 시인의 한 줄 마냥 절대 호락하지 않다. 하나같이 모진 각오로 뱉어내는 문학의 표현들이다. 뮤지션의 이름(푸른하늘)을 등진 저 흐린 구절들이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고 또 찢어진다.
김용우 ‘노들강변’
재즈와 국악이 만나는 일(crossover)은 이제 흔하다. 그것은 장르와 장르 사이에 벌어지는 하나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장르를 떠나 소리의 어울림 측면에서 접근할 때 김용우의 이번 앨범은 남다른 가치를 띨 수 있다. 어울림은 저들 식으로 표현하면 콜 앤 리스판스(call & response)일 텐데 이 작품에서 김용우의 창과 피아노, 드럼, 브라스로 풀어낸 스윙 재즈 연주는 서로 간 정말 기가 막힌 수작을 들려준다. 가령 ‘천안삼거리’의 저 포근한 운치도 좋지만 ‘자진방아타령’에서 그루브를 공유하는 우리네 소리와 트럼펫 솔로 사이 음의 거래는 신기할 정도로 조화로운 것이다. 무릇 훌륭한 조합은 둘을 떼어놓아 개별로도 훌륭한 법. 소리꾼의 소리와 스윙하는 재즈는 독립된 장르로서도 충분히 탁월한 발성, 연주임에 틀림없다.
김주환 ‘The Music Of Cole Porter & Harold Arlen:The Gal That Got Away’
김주환의 스윙 사랑, 스윙 해석은 계속 된다. 팝을 불러도 ‘kissing a fool’ 같은 곡만 부르는 “스윙 예찬론자” 김주환이 이번에 고른 메뉴는 어빙 벌린, 리처드 로저스, 조지 거슈인과 더불어 주옥같은 ‘스탠다드’를 남긴 콜 포터와 ‘over the rainbow’로 유명한 헤럴드 알렌이다. 검갈색 재킷이 암시하듯 그와 세션 뮤지션들의 감각은 충분히 무르익은 분위기. 특히 배선용의 트럼펫과 김지훈의 피아노, 박용규/김재우의 기타는 이 앨범의 가늠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물론 최요셉의 민첩한 타임 키핑과 김인영/김대호의 후덕한 베이스 라인도 제 몫을 넘긴 좋은 연주들이다. 그래서 나는 토니 베넷과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전설의 크루너들과 김주환을 왜 비교하는지 지난 5장 앨범들로도 납득을 하지 못했다면 다시 이 앨범을 권할 생각이다. 보컬리스트가 어떻게 스윙해야 하는지, 그 교과서로 삼아도 될 작품이다.
램넌츠 오브 더 폴른 ‘Shadow Walk’
3년 전 발매한 EP ‘Perpetual Immaturity’로 단숨에 국내 헤비니스의 기대주로 떠오른 램넌츠 오브 더 폴른의 첫 정규작이다. 메탈코어와 멜로딕 데스메탈의 장점만을 흡수한 자신들의 스타일이 여전한 가운데 녹음과 테크닉(작곡과 연주 모든 면에서)에서도 ‘글로벌’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단박에 읽힌다. 박용빈의 확신에 찬 중저음 그로울링, 이승진의 진지한 가사, 열기로 가득한 홍승찬과 김승연의 인터플레이, 그리고 ‘터치 신’ 이종연의 무지막지한 비트 메이킹이 ‘the contender’s abyss’와 ‘god idolatry’, 그리고 타이틀 트랙 ‘shadow walk’를 앞세워 미련 없이 봉인을 푼다. ‘한국에도 이런 밴드가!’라는 감탄은 더 이상 이들에게 무의미해 보인다. 그들은 국적을 벗어던져야 한다. 지금 램넌츠 오브 더 폴른에게 필요한 것은 ‘도대체 이 밴드가 누구야!’라는 해외 불특정 메탈 팬들의 감탄사, 바로 그것이다.
바버렛츠 ‘THE BARBERETTES’
바버렛츠는 인디팝, 모타운, 성인가요 느낌을 모두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보컬 그룹이다. 셋의 화음은 장난스러우면서 고급지다. 첫 번째 앨범 ‘소곡집 #1’에서 이들은 앞으로 더 보여줄 것이 없어보일 정도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2집 뚜껑을 열어보니 1집은 몸풀기에 불과했던 듯 하다. 일단 바버렛츠의 골수팬을 자처한다는 전 메가데스의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만(그는 엔카에 조예가 깊어 결혼도 일본 여성과 했다. 양수경의 광팬이기도 하다.)이 ‘like I do’ 등 세 곡에서 편곡과 작곡을 도왔다. 그 뿐인가. 레이디 가가 신보에서 건진 ‘come to mama’에 버금가는 킬링 트랙 ‘품절남’에는 자미로콰이의 스튜어트 젠더(베이스)가 가세해 그루브를 더욱 부풀렸고, 얼마전 솔로 앨범을 낸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도 ‘바다 아저씨’에 자신의 재능을 보태 앨범 완성도에 기여했다. 한편, 송라이팅 주도권이 거의 안신애에게 넘어온 가운데 경선은 ‘피셔맨’으로 팀의 두 번째 걸음에 힘을 보탰다. 이처럼 부담이 많았을 두 번째 앨범을 그들은 노력으로 극복했다. 단순한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끈기, 집념, 자존감 같은 것들이 이번 신보에선 느껴진다. 셀프 타이틀은 그래서 붙였을 것이다. 오래 갈 팀이다.
불싸조 ‘한(국힙)합 : 이것이 생음악이다’
앨범 제목에 한 번, 내용물에 또 한 번 당신은 두 번을 속게 될 것이다. 일단 이 앨범은 힙합 앨범이 아니다. 단지 힙합을 논하(려)는 앨범이다. 그런데 정작 말(rap)은 없다. 다만 우리말을 만든 세종대왕의 초상화만 속지에 덩그러니 그려져 있을 뿐이다. 테잎(이 앨범은 테잎으로만 들을 수 있다!)을 카세트에 걸어 나오는 음악들은 힙합과는 그다지 관련 없는, 죄다 개러지/로파이 사운드로 무장한 인디록 연주 뿐이다. 아날로그 시절 익숙한 아나운서의 음성이 시작부터 간간이 곡과 곡 사이를 ‘힙합’으로 구분 짓고, 맥락을 거세한 몇몇 대사들이 또한 이 확고하게 반역적인 앨범에 좁쌀 만한 서사를 불어넣는다. 이들은 왜 이런 앨범을 만들었을까. 불싸조의 상징인 한상철은 이 앨범의 ‘변辨’에서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예컨대 랩뮤직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면 악영향을 끼치리라던 제임스 브라운의 말, 모든 게 돈에 의해 움직이는 힙합 MC들의 앨범에 더 이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갈한 아웃캐스트의 앙드레3000을 인용하며 그는 이른바 ‘힙합고시’를 준비하는 작금의 국내 ‘랩 과외 공고’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사와 음원수익으로 큰돈을 벌면서도 정작 “유명한 곡을 게으르게 통샘플” 한 뒤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몇몇 한국적인 사례들에도 그는 남몰래 분개했다. 그래서 앨범 제목이 ‘한(국힙)합’이었던 것인가. 무엇보다 앨범 속지에 직접 인용한 한 베테랑 로커의 말에 불싸조 한상철의 본토 힙합을 향한 사랑과 한국 힙합을 향한 부분적 혐오는 역설적으로 스며있다. 그 말을 끝으로 이 짧은 리뷰를 접는다.
"랩이란, 말은 많은데 정작 하는 얘기는 별로 없다. 랩이 인상적인 점은 세상이 얼마나 음감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드럼 비트와 그 위로 고함을 지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은 열광한다. 음들을 서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거대한 시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키스 리처즈(The Rolling Stones)
스웨덴세탁소 ‘마음’
이 앨범을 관통하는 단 하나 정서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이별에서 비롯되고 이별은 대게 어떤 말 못할 사연을 품게 마련이다. 그 사연들에서 다시 그리움의 정서는 피어난다. 멤버 둘의 부모님 편지에서 가사가 나온 이루마 피처링 곡 ‘처음이라서’와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기를 희망하는 ‘월화수목금토일’ 정도를 빼면 대략 그 정서는 스웨덴 세탁소 2집의 전반적인 정서이다. 담담한 최인영의 목소리는 가을방학과 옥상달빛, 때론 미스티 블루스러운 감성으로 듣는 이들의 감성을 파고든다. 물론 이번 작품에서 최고 곡은 ‘두 손, 너에게’로, 조용필 정도만이 대적할 수 있을 베테랑 보컬리스트 최백호가 피처링 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가 곡 속에 아무렇지 않게 녹아들 때 나는 아이처럼 전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