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베리 별세
밥 딜런은 그를 “로큰롤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렀다. 테드 뉴전트는 누구도 그의 릭(lick)을 모르고선 록 기타를 칠 수 없으리라 단언했고, 존 레논은 로큰롤의 다른 이름은 그의 이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척 베리. 존 레논의 말처럼 그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와 동의어였고 미국 대중음악의 산 증인이었으며, 백인 음악(컨트리)과 흑인 음악(리듬 앤 블루스)을 로큰롤이라는 이름 아래 대동단결 시킨 위대한 개척자였다. 그런 그가 현지 시간으로 지난 3월18일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향년 90세였다.
척은 그냥 거장이 아니었다. 그는 거장들이 존경한 거장이었다. 세계 최고 블루스, 로큰롤 밴드인 롤링 스톤스는 54년 전 자신들의 데뷔곡으로 척 베리의 ‘Come On’을 선택했고 현대 대중음악의 바로미터인 비틀즈 역시 자신들의 초기 앨범들에서 척 베리를 아낌없이 커버했다. 비치 보이스의 히트곡 ‘Surfing U.S.A.’는 척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 가사만 바꾼 곡이었고, AC/DC의 앵거스 영은 평생을 척 베리의 덕워크(duckwalk)를 따라하며 그의 음악 후손임을 자처했다. 또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처'(1985)에서 마이클 제이 폭스는 주다스 프리스트도 커버했던 ‘Johnny B. Goode’을 온 몸으로 연주, 지미 헨드릭스와 에드워드 밴 헤일런보다 왜 척 베리가 더 위대한지를 간접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이 무지막지하게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에게도 무명 시절은 있었으니 이는 다넬 마틴 감독의 2008년작 '캐딜락 레코드'와 음악평론가 겸 만화가인 남무성의 'Paint It Rock'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두 작품은 레너드, 필 체스 형제가 창립한 소규모 레이블 체스 레코드(Chess Records)에 모던 시카고 블루스 거장 머디 워터스가 록의 거장이 될 척 베리를 괜찮은 신인이라며 소개하는 장면을 비롯, 그가 록과 기타 리프 역사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1959년 “부도적한 목적”으로 미성년자를 데리고 주 경계를 넘다 경찰에 체포된 척 베리의 전성기 흑역사까지 두루 훑어주고 있는데 그의 데뷔 때와 전성기를 한 자리에서 살펴보기에는 최적의 콘텐츠라고 본다.
척 베리는 누구에겐 한 곳에만 올라도 가문의 영광일 그래미 평생공로상과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을 모두 이루었고 그의 대표곡 ‘Johnny B. Goode’은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와 크림의 ‘Crossroads’를 제치고 유력지 롤링 스톤이 꼽은 ‘위대한 기타 송’ 1위에 올랐다. 이틀 전 부고를 접한 또 한 명의 대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척을 “가장 위대한 록 전문가이자 기타리스트, 가장 순수한 로큰롤 작사가”였다 추도했으며,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개척자. 혁신가. 전설.”이라는 말로 “다방면에서 멋”졌던 거장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살아서도 전설이었고 죽어서도 전설이 될 뮤지션. 세상에 록을 선물하고 간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Rest In Peace Chuck Berry (1926.10.18 ~ 201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