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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16. 2017

완성된 오리지널리티

로다운30 [B]


최병준의 덜컥거리는 드럼, 따뜻하지만 예리한 톤을 가진 김락건의 베이스가 스미듯 들어오고 전상민이 떨구는 스릴 넘치는 건반 음이 곡에 팽팽한 긴장을 불어넣는다. 그 긴장을 찢으며 윤병주의 목소리가 등장, 그의 기타는 이 모든 것들 앞에서 조금 망설이다 크게 코드를 긁은 뒤 훵키 리듬을 잘게 썰어내며 곡 중앙에 들어선다. 곡이 시작하고 3분56초를 지나면서부터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과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번갈아 나오던 중 70년대 오르간 솔로를 곁들이는 로다운30의 신보 첫 곡 ‘일교차’는 그렇게 팬들에게 5년 만 인사를 건넨다.


이어지는 곡은 제임스 브라운을 노골적으로 비튼 ‘더 뜨겁게’. 선공개 되었을 당시에도 느낀 거지만 이번 앨범 전체 톤은 확실히 건조하고 창백하다. 나쁜 뜻에서가 아니라 그만큼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라 어떤 완벽주의마저 이번 사운드 디자인에는 있다는 의미다. 이 사운드를 매만져 준 엔지니어는 다름 아닌 피스 뮤직 스튜디오(Peace Music Studio)의 주인 나카무라 소이치로(中村宗一郎).



스토너와 노이즈록에 일가견이 있는 밴드 보리스(Boris)를 비롯, 신타로 사카모토가 이끄는 사이키델릭 록밴드 유라유라테이코쿠(ゆらゆら帝国), 포스트록과 노이즈록을 동시에 들려주는 니센넨몬다이(にせんねんもんだい), 그리고 포스트 펑크 밴드 오거 유 애스홀(Ogre You Asshole)과 작업했고 프로듀싱, 송라이팅, 엔지니어링을 홀로 도맡아 하는 멀티 연주자 메이어 호손(Mayer Hawthorne)의 러브콜까지 받은 바 있는 그는 로다운30이 이펙터와 주법으로 의도한 노이즈를 제외, 이 앨범에 단 한 톨의 군더더기 소리도 허용치 않으며 “알아서 해 달라”던 멤버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한편, 신작에 수록된 모든 가사와 곡을 쓴 윤병주의 사유는 ‘그대가 없었다면’이나 ‘그 땐 왜’처럼 옛사랑을 향한 추억도 있는 반면 문학, 정치적인 것들도 있었는데 미국 호러 SF 작가 H. P. 러브 크래프트가 만든 가상의 책 이름을 곡 제목으로 쓴‘네크로노미콘’과 박정희의 ‘잘 살아 보세’ 연설을 인트로에 새긴 ‘저 빛 속에’가 대표적이다.


넘실대는 뉴메탈 그루브를 구성 양 끝에 둔 ‘네크로노미콘’은 곡 중반부에서 서정의 멜로디를 노이즈에 파묻으며 반전을 노렸는데 이는 마치 에릭 클랩튼의 ‘Layla’ 에필로그에 너바나와 소닉 유스가 서식하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저 ‘빛’ 속인지 저‘빚’속인지 모를 대한민국의 현재를 선물한 박정희의 흑백 연설로 시작하는 ‘저 빛 속에’는 죽어서도 살아있던 그의 서슬 퍼런 영혼과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된 그의 딸이 남긴 이미지와는 별개의 경쾌한 비트로 일관해 따로 흥미롭다. 친동생을 ‘빨갱이’라 부르며 대립하는 형제의 육성이 담긴 ‘하고 싶은 말’의 창작자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가 이 곡에 삽입되었다.



여기에 레너드 스키너드가 한국 밴드였다면 들려줬을 법한 ‘그 땐 왜’, 프린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프린스를 추모하는 느낌 ‘바늘’, 그리고 다이어트 한 ‘아스팔트’ 같은 ‘가파른 길’과 윤병주의 날카로운 트레몰로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는 ‘검은 피’는 비록 탁한 블루스록 기운이 이 앨범 전체에 퍼져있더라도 이번 앨범이 가장 깊이 받아들인 장르가 훵크라는 것을 온몸으로 들려주고 있다.


남무성의 ‘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 밥 딜런 편에서 “음악을 많이 들어야 흉내라도 낼 게 아니냐”라는 대사가 있었다. 음악을 찾아 듣고 레퍼런스를 다양하게 충전해야 자신의 음악에 더 깊이를 줄 수 있으리라는 일갈이었다. 나는 로다운30,구체적으로 윤병주의 이번 작품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흉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장르 가리지 않고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는 많이 들어 자신의 것을 찾고 만든 뮤지션 또 기타리스트로 훗날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반드시 회자되어야 할 인물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흉내. 모든 예술가의 지상 과제일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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