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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26. 2017

자우림의 3장

<Stream> 기고

* 이 글은 엔에이치엔벅스에서 발간하는 음악 전문 매거진 <Stream>에 실린 글입니다.



[Purple Heart] (1997)


1996년 11월 김윤아, 이선규, 김진만이 만나 밴드 미운오리(자우림의 전신)가 결성되었다. 갑자기 공석이 된 드러머 자리에 김윤아가 과거 동료 구태훈을 소개, 영입해 최종 라인업이 완성되었으니 이것이 97년 3월의 일. 앨범 [Purple Heart]는 영화 <꽃을 든 남자> 삽입곡 ‘Hey Hey Hey’의 인기에 힘입어 발매한 자우림의 공식 데뷔작이다. 비슷한 컨셉의 동시대 밴드들, 예컨대 삐삐밴드나 주주클럽, 더더에 비해 바리톤을 곁들인 김윤아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탁월한 송라이팅 실력은 확실히 차별되는 것이었다. 



가사와 사운드도 마냥 밝지만은 않아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원제:Boxing Helena)>에 영감 받은 ‘밀랍천사’와 어둡고 축축한 90년대 시애틀 록 사운드가 떠오르는 ‘VIOLent VioLEt’은 각각의 예들이다.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히트곡 ‘일탈’, 대중 취향을 정면 겨냥한 ‘애인 발견!!!’ 등이 수록되었고 헤비 로큰롤 트랙 ‘어른아이’ 같은 곡에서는 기타리스트 이선규의 개성도 슬쩍 엿볼 수 있다. 한충완과 김광민이 건반 주자로 참여했으며 패닉의 이적은 ‘일탈’에서 어레인지와 프로그래밍, 피아노까지 도맡아주었다. ‘욕’과 ‘예뻐’를 포함 단 네 곡을 빼고 모두 김윤아가 썼다. 요컨대 [Purple Heart]는 한국 모던록의 발견이요 시작이었다.



[All You Need Is Love] (2004)


비틀즈의 따뜻했던 67년 히트 싱글 제목을 앨범 타이틀로 썼다고 해서 이 앨범이 마냥 달콤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자우림을 아직 잘 몰랐던 것이리라.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곡이 들려주듯 김윤아는 미친 사람들이 더 미친 세상을 만드는 걸 막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 말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 딕 데일 풍의 서프록 기타 리프로 문을 여는 연주곡 ‘Luv Pill’을 지나 훵크 소울 밴드 커먼 그라운드의 브라스를 입힌 스카 펑크 트랙 ‘하하하쏭’은 앨범 제작 전 멤버 모두가 함께 들었다는 엔카 모음집에 영향 받은 흔적이다. 



김윤아의 두 번째 솔로작 [유리가면]에도 은근히 녹아있던 이것의 증거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좀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밴드에서 김윤아 다음으로 작곡 비중이 높은 이선규의 ‘I Saw Him’과 ‘거지’는 작사가 이선규를 부각시켰고, ‘171771’은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시절 ‘I Luv U’를 뜻했던 것으로 이 음반에서 가장 순수한 영역을 담당한 트랙이다. 반면, ‘미쓰코리아’에 버금가는 김윤아의 일갈을 담은 ‘실리콘벨리’와 대기업 하청업체들의 입장을 풍자한 ‘파트너’는 이것이 음지와 양지를 늘 함께 더듬는 자우림의 앨범임을 새삼 환시시켰다.



[음모론] (2011)


김윤아는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지만 대중은 갸우뚱했던 6결과적으로 범작도 걸작도 아닌 조금은 어정쩡한 위치에 놓이게 된 7집을 거쳐 다시 제목도 우울한 8집을 가지고 돌아온 자우림김윤아의 말마따나 “붉으면서 푸르고 검으면서 하얀” 자우림만의 울고 웃는 음악을 당시에도 들려주었다어차피 죽음이라는 같은 길을 향해 갈 뿐이니 순간을 행복하게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Happy Day’로 시작하는 본작은 밴드가 늘 그래왔듯 사회 비판적이고 가사를 음악의 중심으로 보는 그들 철학에 맞춰 여전히 사유 중심적이다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자신만의 아이돌을 만들어 마음껏 사랑하라는 ‘Idol, GM사 전기자동차 이름을 곡 제목으로 쓰며 석유회사 측 음모를 의심한 어쿠스틱 팝 ‘EV1조작하고 왜곡하는 언론을 향한 불신을 담은 ‘Peep Show지겹도록 통속적인 드라마를 소재로 페미니즘 냄새를 풍겼던 ‘Red Rain’ 등이 그 대표 곡들이다여기에 2004년부터 호흡을 맞춰 와 이제는 자우림의 멤버나 진배없는 일본인 엔지니어 요시무라 켄이치의 사운드 디자인 솜씨는 멜로디가 좋은 이선규의 ‘답답’과 김윤아가 쓴 ‘from:me@iwaswrong.com to:you@aremy.net’ 같은 곡들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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