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빅버튼 [Man of Spirit]
해리빅버튼의 이번 앨범은 텀블벅 후원자 189명의 밀어주기로 완성해낸 것이다. 텀블벅 펀딩은 지지자들과 창작자간 끈끈한 유대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인 동시에 팀 자체 수입으로는 앨범 제작이 힘들다는 안타까운 현실 반영일 수도 있다.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그런 감동과 고민의 두 얼굴을 가진 곳이다. 한국 땅에선 연명이 쉽지 않은 하드록에 ‘포스트’라는 접두어까지 붙여 이 장르를 탐하는 해리빅버튼의 끈기와 집념. 이번 발매는 장르를 향한 밴드의 그 열정이 낳은 당연하고도 기분 좋은 결과였다.
두 번째 정규작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 앨범 ‘Man of Spirit’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 두 번째 미니 앨범에 가까운 모양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미니 앨범 ‘퍼펙트 스톰 (Perfect Storm)’의 앨범 버전(Album Ver.) 트랙들에 신곡 6곡을 보탠 작품이다. 그마저도 ‘Social Network’와 ‘Man of Spirit’은 2015년 여름과 겨울에 각각 미리 선보였던 것들이어서 결국 신작은 ‘퍼펙트 스톰’까지 해리빅버튼을 몰랐던 이에게는 완전한 정규 앨범, ‘퍼펙트 스톰’까지 알았던 이에게는 또 다른 미니 앨범, 지난 2015년 발표한 싱글 두 장까지 모조리 섭취한 이들에겐 4곡짜리 미니 앨범인 셈이다. 정규 2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다섯 곡은 기존 곡들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곡들로 채웠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 건 그래서이다. 발표할 가치가 없는 곡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밴드의 완벽주의가 때로 팬들의 만족과 대립할 수 있다는 건 한편으론 슬픈 일이다.
물론 그런 완벽주의 덕에 새 앨범을 위한 여섯 곡은 모두 제값을 한다. 자유를 위한 깨어있음을 부르짖는 ‘Man of Spirit’은 평소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이성수(보컬/기타)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곡으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결합이라는 이른바 ‘모던 빈티지 포스트 하드록’ 사운드를 이 곡은 철저히 들려주고 있다. 느리게 침잠하면서도 불뚝 치솟는 선동의 기운이 이성수의 바리톤 보컬과 잘 어울린다. 이 거칠고 불안한 양상은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 지난 정부를 향한 직격탄 ‘SOS. (Save Our Souls)’까지 그대로 옮겨진다.
증오와 무지, 혐오와 차별, 이기심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타락을 일갈한 ‘Contamination’을 지나면 속도를 줄인 메탈리카의 ‘Now That We`re Dead’ 같은 ‘Drifter’가 흘러나온다. 언뜻 길을 잃은 존재의 상실감을 다룬 듯한 이 노래는 사실 이성수가 좋아했던 세 거장 데이비드 보위, 레미(모터헤드), 프린스를 추모하는 곡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음악으로 질주하는 방법, 음악으로 흥을 내는 비결을 아마도 저 셋은 이성수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리라. 프론트맨의 추억을 곱씹은 곡을 지나 이제 앨범은 조용한 분위기 반전을 이루는데 바로 출렁이는 마칭 리프를 타고 템포에 가속을 붙인 ‘Social Network’다. 실재하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고 있는 SNS, 그 수많은 소통과 관계를 이야기 한 이 지점에서 신보는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이어 다 쓸어버릴 기세로 그루브 리프를 강조한 ‘Fun is Fun and Done is Done’은 특히 라이브에서 좋은 반응을 기대할 만 한데 본작에서 글쓴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곡 제목은 알려진대로 스티븐 킹의 첫 이북(ebook) ‘총알차 타기 (Riding the Bullet)’에서 가져온 것이다.
남은 후반 다섯 곡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난 미니 앨범 ‘퍼펙트 스톰’에 수록된 것들의 새로운 버전이다. 지난 스튜디오 버전과 이번 앨범 버전의 차이는 미세하면서도 섬세한데, 그들의 디테일이 듣는 사람들의 귀에 어떻게 다가갈지는 아마도 개인 차가 있을 것이지만 확실히 더 다듬어졌고 그만큼 소리에 탄력이 붙었다는 느낌은 든다. 이 곡들과 더불어 이 작품 전체 마스터링은 '퍼펙트 스톰' 당시 엔지니어였던 뉴욕 스털링 사운드의 실력자 조 라폴타(Joe LaPorta)가 다시 맡아 해주었다. 그는 'Man of Spirit'에 담긴 에너지에 만족한다고 소감을 전했는데 나 역시 동감한다. 비록 완전한 정규작은 아니어도 완전에 가까운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작곡과 녹음에 있어 밴드의 완벽주의, 그리고 조 라폴타의 치밀한 마스터링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