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새트리아니 내한공연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는 족히 되었을 그날 조 새트리아니는 교통 사정으로 약속 시간보다 15분 여 늦게 무대에 올랐다. 구 악스홀, 그러니까 광나루역 2번 출구에서 400미터 가량 떨어진 데 위치한 예스24 라이브홀에는 전날 티켓 판매 현황의 두 배에 이르는 관객이 몰려 ‘외계인 기타리스트’의 첫 내한공연을 반겼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 지미 헨드릭스 등 새트리아니와 관련된 여러 음악들이 장내에 꾸준히 흐른 뒤 키 큰 드러머 마르코 민네만이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성큼성큼 자신의 드럼 셋으로 향했다. 이어 마르코와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아리스토크랫츠(The Aristocrats)를 이끄는 베이시스트 브라이언 벨러, 프랭크 자파와 활동했던 멀티 연주자 마이크 케닐리(기타, 건반)가 차례로 등장했고 트레이드 마크인 오클리 선글라스를 낀 조 새트리아니는 마지막에 무대 왼편에서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관중 앞에 섰다.
이날 그와 멤버들의 연주는 거침이 없었다. 초반 사운드가 조금 뭉개진 것을 빼면 거의 음반을 듣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이들의 연주는 비현실적이었다. 긴 팔 탓에 유난히 동선이 컸던 마르코 민네만의 드러밍은 익살을 더한 솔로 타임에서 정점을 찍었고 간간이 문어발 핑거링을 선보인 브라이언 벨러도 수퍼 밴드에 몸담은 베이시스트의 면모를 유감 없이 뽐냈다. 아마도 이날 가장 바빴을 마이크 케닐리는 기타와 건반을 떡 주무르듯 하며 조 새트리아니를 완벽히 보좌, 보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키스 에머슨이 떠올랐던 그의 건반 솔로와 새트리아니를 코너로 몰아세운 트윈 기타 솔로는 어쩌면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을지도 모른다.
선곡은 근작 [Shockwave Supernova]에서 3곡 정도를 빼고 모두 과거 대표작들에서 이루어졌다. 공식 데뷔 31년 만 첫 내한공연이니 당연한 일이다. G3 콘서트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Satch Boogie’를 비롯 최고작 [The Extremist]를 대표하는 두 곡 ‘Summer Song’과 ‘Friends’, 2004년작 [Is There Love in Space?]를 상징했던 ‘If I Could Fly’, 라이브에서 반드시 연주하는 ‘Flying in a Blue Dream’, 사계절 숲속 영상을 배경으로 나비와 얼룩말의 사랑을 상상한 신작 수록곡 ‘Butterfly and Zebra’, 한국 대중에게도 크게 어필한 발라드 연주곡 ‘Always with Me, Always with You’, 터프한 ‘Ice 9’, 중기 대표곡 ‘Crystal Planet’까지. 잠들었던 팬들의 추억 샘을 건드리며 하지 않은 곡 빼곤 거의 다 했던 미련 없는 선곡이었다. 조는 덜컹이는 블루스 록 넘버 ‘Big Bad Moon’과 마블 코믹스의 애니메이션을 곁들인 ‘Surfing with the Alien’을 앵콜로 대한민국의 첫 초대에 뜨겁게 화답하고 무대를 떠났다.
공연을 함께 본 지인들이 “서커스 같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내놓은 총평을 그러나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멤버들의 그 놀라운 테크닉도 테크닉이려니와 2시간 넘게 연주하면서 거의 흔들림 없던 집중력도 이유로서 한 몫 했다. 파트별로 구사할 수 있는 웬만한 테크닉은 거의 다 선보인 그날 무대는 마치 프로 연주자가 가야 할 길, 갖추어야 할 실력 조건을 넌지시 말하는 듯 보였다. 물론 그 길은 멀고 험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희망은 음악이 가진 큰 장점이요 의미일 터다. 조 새트리아니의 첫 내한공연은 공연장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노력과 결실’이라는 같은 숙제를 던지고 어젯밤 꿈처럼 사라졌다.
* 이 글은 대중음악 전문지 <파라노이드> 30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