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베리 & 로저 워터스
거장 둘의 신보가 줄줄이 나온 6월 초였다. 단, 한 명은 이미 죽은 거장이고 또 한 명은 아직 살아있는 거장이다. 척 베리와 로저 워터스. 두 말이 필요 없는 장르의 대명사들이 가져온 앨범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들어보고 싶어 잠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먼저 척 베리의 음반이다. 제목도 단순하게 ‘Chuck’이다. 이것은 그가 죽은 뒤에 발매된(posthumous), 앞으로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그의 마지막 신보다. 하지만 척은 자신의 마지막 앨범에서 거짓말처럼 되살아난다. 잉그리드 베리의 하모니카, 로버트 로의 피아노, 흥과 기교를 뒤섞은 척의 보컬/기타가 어우러진 순혈 로큰롤 트랙 ‘wonderful woman’과 그 유명한 홍키 통크 블루스 리프를 스윙 리듬으로 뭉갠 ‘big boys’로 시작하며 척은 부활하는 것이다. 이 두 곡에는 각각 개리 클락 주니어와 톰 모렐로라는 거물급 후배들이 참여해 척의 존재와 곡의 가치를 드높여 주었다.
2016년 10월, 자신의 90세 생일 때 발매 계획을 밝히고 아내 텔메타 “토디” 베리에게 바친 이 앨범은 그러나 마냥 흥겨운 비트로만 일관하진 않는다. 로큰롤 외에도 로큰롤의 부모 같은 장르들인 블루스와 컨트리, 빈티지 리듬 앤 블루스에 일가견이 있었던 척의 취향에 앨범은 느리고 부드럽게 안긴다. 또 한 번 낭창낭창한 기타 리프를 흘려주는 ‘Johnny B. Goode’의 후속 ‘Lady B. Goode’ 정도를 빼면 3번 트랙 ‘you go to my head’부터 끝곡 ‘eyes of man’까지 작품은 거의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흘러가는 거다. ‘she still loves you’에서 기타리스트 척 베리는 블루베리 힐 밴드(The Blueberry Hill Band)의 연주를 업고 짧고 굵은 기타 솔로를 뽐내고 있으며, 그의 자식뻘인 AC/DC의 ‘boogie man’같은 ‘dutchman’에선 위대한 스토리텔러 척 베리를 만날 수 있다. 음반의 주인공이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만치 사실적인 로큰롤 앨범. 과연 음악으로 불멸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뮤지션들이 가진 가장 값진 특권이다.
죽은 전설의 마지막 앨범을 들었으니 이번엔 살아있는 전설의 신작을 들을 차례. 그는 다름아닌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한 삶인가요?(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라는 앨범 타이틀은 지금 한국인들에게도 와닿을 어떤 절박함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실제 정치 사회적이다. 로저가 이 앨범을 위해 쓴 가사는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쓴 시에서 비롯되었고 반파시즘, 반제국주의, 반탐욕을 거름으로 자란 그 단단한 저항 의지는 영국 10만 청년들이 실업난에 허덕이던 'Animals' 시절에 정확히 맞닿아 있다. 달라진 것이라면 메리 화이트하우스를 겨냥했던 'Pigs (Three Different Ones)'라는 총구가 도널드 트럼프를 향한 것 정도랄까. 이 아름답게 살벌한 앨범에 라디오헤드와 벡의 앨범을 주무른 니겔 갓리치가 기꺼이 동참, 어레인징과 사운드 콜라주, 기타와 키보드에서 맹활약 해주었다.
로저 워터스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은 어쩔 수 없이 핑크 플로이드에 빗대어 설명해야 하고 또 들어야 한다. 핑크 플로이드 시절 중에서도 로저가 주도한 시절 작품들 성향 즉, 'Animals'에서 'The Final Cut'을 관통하는 씨네마틱 오디오 프로덕션의 그 광활함을 신보는 담지했고 또 닮아 있다. 84년작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의 포인트가 에릭 클랩튼의 기타였다면 이후 33년 뒤 솔로작에선 로저 워터스의 사회 의식과 작법 철학이 그 핵심이다. 인트로 나레이션 'when we were young'에서 'deja vu'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The Wall'이라는 컨셉트 앨범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옳다. 이 앨범은 오매불망 재결성을 바라온 핑크 플로이드 팬들, 그리고 힘겹게 삶을 꾸려가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로저 워터스가 바치는 거대한 헌사이자 지구상 모든 압제자와 독재자들에게 치켜세운 맹렬한 가운뎃손가락이다. 어둡고 불안하지만 밝은 희망의 설렘이 공존한다. 시드 바렛이나 데이빗 길모어의 핑크 플로이드보다 로저 워터스의 핑크 플로이드를 더 사랑했던 사람들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을 게다. 그것은 먹구름 아래 기어코 꽃 한 송이 피워내는 음악이다. 로저 워터스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