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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07. 2017

9년 만의 6집, 언니네이발관의 마지막 이발

언니네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


괴수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 속 고독의 정서를 좋아하는 이석원이 자신의 밴드 마지막 앨범 제목에 ‘홀로’라는 수사를 넣은 것은 어떤 숙명처럼 느껴졌다. 불안과 고통에서 가장 빛나는 결과물을 얻는다는 그의 창작 생리는 데뷔 23주년, 5집 이후 9년 공백 끝에 비로소 끝을 보게 되었고 언니네이발관 6집인 그것은 곧잘 혼자가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돌이켜 보는 앨범으로서 이 땅 위에 멀뚱히 남게 되었다. 전반부 건반 하모니와 후반부 보컬 하모니가 감동적인 ‘마음이란’의 가사처럼 이제는 정말 그 어떤 간절함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선언은 진실이었다.


사실 작별 선언은 지난 2009년에 이미 했었다. 이석원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6집이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 밝히며 40대 중반이 되면 더는 반짝일 수 없을 창작력의 내리막길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석원과 이능룡은 그래서 자신들의 마지막 앨범에 그 길었던 시간만큼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 했던 듯 하다. 예컨대 이석원이 언제나 음악의 첫 번째라고 생각해온 구성과 멜로디는 물론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마스터링”을 거쳤다는 소리의 질감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다. 발매까지 다섯 차례 연기, 곡당 열 다섯 차례 믹싱, 그리고 8일간 마스터링을 거친 전작 [가장 보통의 존재]보다 조금 더 뛰어난(또는 뛰어나게 들리는)이 결과물은 첫곡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가 전면적으로 증명하듯 그간 언니네이발관 음악을 총괄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부정하는 가장 그럴듯한 음악적 자폭이다.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에는 구체적인 사운드보다 추상적인 감정에 치우쳤던 5집의 자기 반성 같은 측면이 있다.



한국 최초의 기타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한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은 밝으면서 또 어두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리버브 바른 기타 톤과 훵키 리듬은 밝았지만 무심함을 넘어 무성의하게까지 들렸던 보컬과 마이너 멜로디, 헐벗은 문학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가사는 어두웠다. 2015년 11월1일에 첫 녹음을 시작한 신작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결정과 판단이 질기게 반복된 스튜디오 작업을 거쳐 세상과 만났다. 밝은 걸 질색하는 이석원의 성향은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와 타이틀 트랙 ‘홀로 있는 사람들’의 신스팝 소스에 다른 느낌으로 녹았고, 첫 레코딩을 한 그해 겨울에 선공개 한 ‘혼자 추는 춤’과 피처링을 영광이라 밝힌 아이유와 부른 ‘누구나 아는 비밀’은 반대편 밝은 느낌으로 앨범의 반을 채웠다. 3집과 5집 시절이 은근히 포개진 듯 ‘나쁜 꿈’은 딱 그 중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는 사운드와 이야기와 노래와 기타의 마스터가 되고 싶었다는 언니네이발관의 의지와 집념이 뭉뚱그러져 있다.


이석원이 고등학생 때 본 일본 포르노 제목에서 따온 밴드 이름. 그의 말을 빌리면 1집은 데뷔작이었고 2집은 상업 면에서 패배작이었으며, 3집은 재기작이었고 4집은 회심작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들 최고 앨범으로 꼽아온 5집은 야심작 내지는 벼르고 별렀던 작품이었다. 음악이 하얗느냐 검었느냐에서만 살짝 차이를 보였을 뿐 딱히 구체적인 해외 레퍼런스가 없어 그들은 지난 20여 년간 순수하게 언니네이발관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서글픈 작별의 순간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벌써부터 5집을 능가한 이들 최고작이라는 찬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김치 한 조각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는 이석원의 몸 상태에 비추어볼 때 이를 단순히 회심의 역작이라 부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석원의 책 ‘보통의 존재’ 속 한 문단에서 ‘말’을 ‘음악’으로 바꾸어 이 앨범, 그리고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을 기록해두려 한다.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을 그리워하며, 그간 그들의 수고와 업적에 감사와 존경을 담아.


음악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억될 뿐이다. 나를 황홀하게 했던 수많은 음악들은 언제나 내 귀에 들려온 순간 사라져버렸다. 음악이란 이처럼 존재와 동시에 소멸해버리기에 그토록 부질없고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석원 산문집 ‘보통의 존재’ P.14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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