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Jun 02. 2017

성숙해진 세 번째 검정치마

검정치마 3집 Pt.1 [TEAM BABY]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첫사랑을 떠올리며 썼다는 ‘기다린 만큼, 더’에서 치면 11개월 여 만, 새 앨범에 다시 실린 ‘Everything’과 ‘내 고향 서울엔’을 뺀 싱글 ‘Hollywood’에서만 헤아리면 3년 여 만, 자아 스토리텔링집이었던 두 번째 앨범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에서 따지면 무려 5년 여 만이다. 길었던 공백의 이유가 새로운 취미 생활을 위해 산 게임기 때문이었는지, 발표할 노래는 많아도 게을러 미뤄두는 습관 탓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검정치마(=조휴일)를 받아들일 준비조차 안 된 이 시대의 탓인지는(‘난 아니에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조휴일은 약속과 은둔에 목말라 있던 팬들 앞에 비로소 정규 앨범을 갖고 나타났다. 물론 그것조차 ‘파트1’이라는 한계를 가진 것이지만 팬들은 이 조차에도 고마워하는 눈치다. 칠흑 같은 동굴 속 촛불 하나 켠 것과 그 마저 없이 방치된 어둠은 절대 같을 수 없는 일이다.


알다시피 지금 조휴일이 소속된 곳은 YG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인 하이그라운드(HIGHGRND)이다. 하이그라운드가 검정치마 공식 합류를 발표한 것이 지난 2016년 1월8일이니까 그가 새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이전부터 검정치마 팬을 자처해온 하이그라운드 대표 타블로는 거의 삼고초려에 가까운 수소문 끝에 조휴일을 영입했다. 그리고 조휴일은 하이그라운드가 자신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 계약했다고 말했다. 당시 계약은 앨범 몇 장을 내자는 조건도 없는 계약이었고, 그냥 검정치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계약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한마디로 검정치마 3집이 늦어진 건 조휴일이 메이저 소속사에 들어가서가 아니라 그냥 본인이 그러고 싶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2집 당시 충동적으로 산 클래식 기타 한 대로 앨범에 수록할 10곡을 단 2주 만에 만들어낸 조휴일이 곡이 없어서, 곡을 위한 아이디어가 바닥 나서 넋 놓고 있었다고는 더더욱 생각하기 힘들다. 그는 그저 있는 곡들을 더 다듬고 싶었을 것이고 지난 앨범들보다 더 완성도 있는 앨범을 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본인 만족은 기본이다. 나는 조휴일이 기대와 목적 없이 만든 2집과 다른 마음가짐, 다른 정서적 환경과 조건에서 이번 앨범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2017년 5월이라는 타이밍과 트리플 앨범이라는 포맷에서 고민만이 있었을 거라 나는 보는 쪽이다.


자신의 부모님 결혼사진을 재킷으로 쓴 ‘TEAM BABY’는 물론 밥값과 차비만 나와도 감동 먹었던 시절 조휴일이 하이그라운드라는 다른 물리적 조건 아래에서 만든 앨범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앨범마다 듣는 재미가 쏠쏠하고 항상 다른 음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조휴일에게 그 조건은 매우 소중하고 그래서 의미 있는 조건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이론적 분석 보다는 느낌에 의존한 창작을 지향하는 뮤지션 조휴일의 성향까지 바꿀 순 없었다. 언젠가 대중적인 음악을 만든다는 건 대중음악을 모방하고 싶다는 뜻이라며 자신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인디음악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장인의 고집이 보였고 프로로서 신념이 느껴졌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금, 그러니까 멜로디와 편곡에 치중한 1집, 놀이에 가까운 개인만족에 집중한 2집을 지나 “매우 성숙한 앨범이 될 것”이라고 했던 3집의 1/3을 내놓은 지금 그는 비로소 그때 말뜻이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려는 듯 보인다. 즉, 길었던 공백기는 전략이 아닌 전념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검정치마 3집 파트1은 패기 넘치는 ‘좋아해줘’로 문을 연 데뷔작이나 컨트리록 ‘이별노래’로 시작한 2집과는 무관한, 바닥까지 꺼지는 쓸쓸함을 담은 드림팝 트랙 ‘난 아니에요’로 첫 인사를 한다. 굳이 접점을 찾자면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작곡한 ‘Everything’에 가까운 이 슈게이징 멜랑콜리는 미디엄 로큰롤 비트를 먹인 ‘Big Love’에서 사랑 찬양가 ‘Love Is All’로 이어지며 살짝 무마가 되는 듯 싶지만 결국 앨범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적 전제가 된다. 그리고 조휴일이 예고한 매우 성숙해질 음악의 실체가 그 전제에는 담겨 있다. 이는 ‘무임승차’나 ‘Antifreeze’의 코러스 멜로디를 기대했던 이들, ‘강아지’나 ‘외아들’ 풍 가사를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이 음반이 큰 만족을 주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차라리 ‘Stand Still’보다 ‘Fling; Fig From France’를, ‘기사도’보단 ‘앵무새’에 더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더 사랑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폭죽과 풍선들’의 색소폰 솔로, ‘나랑 아니면’에서 피아노와 스트링의 깊은 교감, 그리고 성가대 오르간과 클래식 편곡을 입힌 ‘혜야’는 그 좋은 예들이다. 전작들에 비해 더 풍요로워지고 다소 신비로워진 이 느낌은 신나야 할 레게(‘한시 오분 (1:05)’)에까지 번져 흥겨운 곡을 마냥 흥겹게만 들을 수 없도록 만든다. 'TEAM BABY'는 슬프면서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한 앨범이다.

드레이크의 [Thank Me Later]를 ‘성공적인 데뷔 앨범’으로 칭찬하며 자신은 이룬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했던 조휴일. 서태지와 김수철, 앨라니스 모리셋과 레몬헤즈, 빌트 투 스필과 윌코, 노브레인의 앨범 ‘청년폭도맹진가’와 조덕배의 곡 ‘너풀거리듯’을 함께 좋아하는 그는 송라이팅 스타일에 있어 “코스모폴리탄적 무국적”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한국 음악계 전대미문의 개성파였다. 그런 개성파 뮤지션이 세 번째 앨범으로 돌아온 것이고 그는 2/3를 남긴 채 아직 덜 돌아왔다. 예상컨대 파트2와 파트3은 파트1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들려줄 것이라 나는 기대하고 있다. 그것이 거시적 장르 성향에서든, 미시적 트랙별 색깔에서든 검정치마 조휴일은 분명 "듣는 재미가 쏠쏠하고"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가지고 곧 다시 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팔방미인 뮤지션의 음악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