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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02. 2017

팔방미인 뮤지션의 음악 세계

방경호 [Unnamed Road]


방경호 음악의 매력은 브리티시 록의 축축한 노이즈에 가을빛 쓸쓸한 낭만을 구겨넣었다는 데 있다. 그의 음악은 한국 밴드 H2O와 영국 밴드 샬라탄스를 합친 듯 들렸고 제이워커는 그래서 90년대 모던록 팬들에게 스치듯 그러면서 강렬히 어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경호라는 이름은 한국 대중에게 아직 덜 낯익다. 많은 밴드를 거치며 그만큼 음악도 오래 했지만 록 음악이 비주류인 대한민국에선 실력과 지명도가 비례 관계가 아닌 탓에 방경호는 여전히 자신을 더 알리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록커로 산다는 것은 이런 베테랑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배운 재즈로 자신의 영웅인 팻 메스니를 음미한 ‘The Journey of Mine’을 낸 것이 2015년 9월.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흘러 사람과 사회, 그리고 뮤지션 자신에 대해 노래한 또 다른 솔로 앨범 [Unnamed Road]가 세상과 만났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기타, 베이스, 프로그래밍까지 모두 방경호 홀로 도맡은 이 작품은 테크닉 보다는 감각에 의존해 재킷의 그림 마냥 길을 잃고 선 한 소년의 복잡한 심경을 음악으로 엮었다. 거친 덥스텝이 칼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첫 곡 ‘일어나’부터 그 무채색 감성은 충분히 무르익어준다.



방경호는 뮤직비디오까지 따로 제작하며 앨범의 얼굴을 ‘Rain’으로 돌리려 했지만 내 귀에 이 음반을 대표할 요소는 펑키 그루브에 속내를 들킨 타이틀 트랙 ‘Unnamed Road’와 묵직한 일렉트로 퍼즈 사운드에 브릿팝의 허무를 담은 ‘Isn’t It War?’에 더 있는 것 같았다. 정직한 록 문법을 갖춘 ‘Ghost Town’과 내면의 해방을 부르짖는 ‘Fly’, 그리고 멜로디와 메시지를 모두 그러안은 ‘꿈을 꾸면서’ 역시 그가 하려는 음악의 핵심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있기는 마찬가지. 작품 후반 나들목인 ‘가면’과 ‘유리’에선 지난 앨범 이후 미처 희석되지 않은 재즈 톤과 리듬 세계가 가만히 꿈틀대고 있고 ‘Picture of Air’와 ‘녹는다’는 핑크 플로이드에서 라디오헤드로 이어져온 앰비언스를 향한 방경호의 음악적 입장 같아 보였다.


그는 언젠가 기억과 추억이 자기 음악의 바탕이라고 했다. 또 과거와 현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미래는 알 수 없어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그가 가진 기본적인 정서였고 생각이었다. 그의 음악이 과거의 기억, 막연하고 희미한 미래의 운명을 오가면서도 뚜렷한 현재의 냄새를 간직한 것은 뮤지션으로서 그런 철학이 반영된 탓일 게다. 기타리스트로서 작곡자로서 또 그 모든 것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편곡자로서 뮤지션 방경호의 욕심과 재능이 이 한 장에 망라되어 있다.


* 이 글은 대중음악 전문지 <파라노이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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