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Blood [How Did We Get So Dark?]
로얄 블러드의 전략은 ‘낯설게 하기’였다. 많은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그랬듯 로얄 블러드의 음악 역시 기존 것을 비틀고 찢고 재조합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 음악은 새롭지 않은 음악에서 새로운 음악을 뽑아낸 모더니즘의 사례다. 레드 제플린의 블루스와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악기 톤, 그리고 뮤즈 식 보컬 라인 및 그루브를 뒤섞으면서 로얄 블러드는 스스로를 음악적으로 정의 내렸다. 게다가 그 라인업이 고작 2인조에 기타 같던 악기 소리가 알고 보니 베이스였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그들은 현대 록스타 반열에 무혈 입성하게 된다.
햇수로 3년 만 새 앨범 ‘How Did We Get So Dark?’는 사실 꽤 기다려온 작품이다. 기다리면서 했던 생각은 이들에게 소포모어 징크스 따윈 없으리란 확신이었다. 되레 1집이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2집도 좋으리란 약속 같은 예감만 있었을 따름이다. 무엇이 그런 장담을 하게 만들었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Figure it out’을 앞세운 1집은 그만큼 이 팀을 향한 큰 신뢰를 나에게 갖게 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더 나은 결과물에 대한 갈증이었고 비슷한 결과물을 향한 집착이었다. 그리고 2집에는 실제 저 히트 싱글을 닮은 ‘Hole in your heart’라는 곡이 보란 듯 있다.
과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더 팝적이면서 더 섬세해졌고 여전히 헤비하다. 팝적이라는 것은 멜로디 얘기이고 섬세해진 것은 마이크 커의 코러스 화음과 벤 태처의 드러밍 영역이다. 헤비니스는 물론 옥타브의 역발상을 통한 ‘기타 같은 베이스’의 굉음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비상과 전락의 폭이 큰 리프 스타일이 역시 뮤즈를 떠올리게 하는 첫 싱글 ‘Lights out’과 ‘Hook, line & sinker’, 블랙 사바스를 닮은 ‘She’s Creeping’ 같은 곡들이 그렇다. 둘은 여전히 4인조인 듯 2인조를 유지하며 도대체 두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만들어내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벤 태처의 드러밍이다. 마이크 커의 베이스 톤과 연주에 비해 덜 주목받은 그의 리듬 쌓기는 사실 로얄 블러드 음악의 핵심이자 중심이다. 과장 좀 해서 그의 드러밍은 로얄 블러드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도입부가 블론디의 특정 곡 비트를 떠올리게 하는 ‘Where are you now?’에서 벤은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침착한 존 본햄 같다. 간결한 리듬 라인으로 거대한 그루브를 뽑아낸다는 점에선 뮤즈의 도미닉 하워드에도 견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리듬은 고요하면서 치밀하다. 빈 곳은 채우고 넘치는 곳은 덜어낸다. 벤의 리듬에는 과잉도 잉여도 없다. 언제나 적당하고 적합하다. 30년 된 미장이 같은 솜씨로 벤은 로얄 블러드 음악에 질서를 선물했다.
예감이 현실이 되어 기쁘다. 애초 우려 따윈 없었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늘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만약 이번 앨범이 별로였다면 나는 조금 슬펐을 것이다. 대어다 싶은 록 밴드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요사이 그나마 발견해낸 가능성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베이스로 기타 소리를 낸다는 화제를 넘어 음악 자체로만 승부할 수 있는 팀이 된 로얄 블러드. 이제 남은 건 페스티벌이든 단독이든 그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내한 공연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