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마저 아름다웠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이하 ‘매닉스’)의 곡은 5집에서 만난 ‘The Everlasting’이다. 아마도 대중음악을 통틀어 내가 좋아하는 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에서 최고를 고르라면 1집 [Generation Terrorists]와 3집 [The Holy Bible]로 좁혀야하는데, 첫정이란 게 무서운지 매닉스 하면 나에겐 역시 록의 박진감과 팝의 서정성, 이념의 낭만을 모두 잡은 1집이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이 앨범이 간직한 젊음의 열기 또는 반기가 내가 이 앨범을 접했던 20대 초반 혈기에 그대로 대입됐기 때문인 것같다. 슬래쉬를 쏙 빼닮은 기타 톤과 솔로(실제 밴드의 메인 송라이터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건즈 앤 로지스 1집을 카피하며 기타 연습을 했다), 뉴욕 돌스와 섹스 피스톨스에서 가져온 펑크(Punk) 유전자, 데이빗 보위가 물려준 글램록의 향기, 클래쉬와 퍼블릭 에너미를 방불케하는 정치적인 가사. 매닉스가 갖춘 그 모든 것은 내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시절 좋아하고 동경하던 것들이었다.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매닉스를 사랑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웬만한 팝스타도 울고갈 제임스의 멜로디 감각이다. 음반을 처음 플레이어에 걸고 첫곡 ‘Slash 'n' Burn’에 움칫했던 내가 ‘Motorcycle Emptiness’의 하염없는 기타 리프 앞에서 무너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직 포르노 배우인 트레이시 로즈와 제임스가 예쁜 듀엣으로 어울린 ‘Little Baby Nothing’에서 조지 마이클을 만났을 때도, 포근하게 질주하는 펑크 트랙 ‘You Love Us’에 동요했을 때도 거기엔 언제나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만이 만들 수 있는 킬링 멜로디 라인이 있었다. 심지어 ‘Love’s Sweet Exile’이 방류한 헤비메탈 리프 위에서도 가슴 설레는 보컬 멜로디는 우직한 정승 마냥 매닉스 음악을 지탱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젊음의 투쟁을 지지했던 [Generation Terrorists]는 밴드가 장담했던 “방콕에서 세네갈까지” 1천600만장을 팔아내지도, 발매 후 단 한 장을 끝으로 전제한 '밴드 해체'로 이어지지도 않았지만 여태껏 12장 앨범을 더 내놓은 그들의 지금을 생각하면 그 허세까지도 가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청춘들의 절망마저 아름답게 대변해준 매닉스의 시작. ‘경제동물’들의 나라였던 일본 요코하마에서 찍은 ‘Motorcycle Emptiness’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며 그 시절을 돌아본다. 날렵한 턱선을 자랑한 제임스의 리즈 시절,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리치 제임스의 수줍은 고독. 돌아갈 수 없어 더 그리운 그때 그 매닉스다.